《세계 경제를 쥐락펴락하는 주요 2개국(G2) 미국과 중국이 연초부터 무역전쟁 조짐을 보이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집권 2년 차를 맞아 다양한 ‘무역 공격’으로 중국을 압박해 북한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엄포를 놓고 있다. ‘미국 우선주의’를 앞세운 대선 공약만 굳게 믿고 그를 밀어준 미 재계의 눈치가 보여서라도 새해엔 제대로 된 무역 압박에 나설 수 밖에 없다는 전망이 나온다. 중국은 미국의 선전포고에 금융시장을 찔끔 개방하고 자국으로 들어오는 수입품에 대한 관세를 내리겠다며 미국을 달래는 듯하면서도 ‘우리도 질 수 없다’는 전의(戰意)를 곳곳에서 드러내고 있다. 미중 무역전쟁으로 중국의 대미 수출이 줄면 중국산 제품 중간재를 많이 수출하는 한국 기업들도 휘청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 트럼프, 기업들 요구 업고 강공 채비 ▼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올해 중국과의 무역전쟁을 불사할 태세를 거듭 밝혀 왔다. 특히 ‘미중 무역전쟁의 빌미는 중국이 제공하고 있다’는 인식을 자주 드러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해 12월 28일 뉴욕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우리는 지난해(2016년) 최소 3500억 달러(약 374조 원)의 대중 무역적자를 기록했다. 여기에는 3000억 달러의 지식재산권 도용 문제는 포함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이는 ‘중국이 대북 제재에 협조하면 무역 압박 수위를 낮출 수 있음’을 시사한 것으로 풀이됐다. 워싱턴의 한 외교 소식통은 1일 “트럼프 대통령이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에게 전폭적인 대북 제재 협조를 기대했지만, 얼마 전부터 중국의 역할에 회의를 품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이어 “올해엔 11월 중간선거가 있는 만큼 ‘미국 우선주의’ 대선공약을 실천하는 차원에서 (중국과의 무역전쟁 불사를) 밀어붙일 가능성이 점점 커지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 문제를 놓고 백악관 내부에서는 연초부터 파워 게임이 벌어지는 양상이다. 강경파로 분류되는 피터 나바로 국가무역위원장과 로버트 라이트하이저 미 무역대표부(USTR) 대표는 트럼프 대통령에게 영향력을 행사해 중국 등에 광범위한 관세를 부과하려 하고 있다. 그러나 온건파인 게리 콘 백악관 국가경제위원장과 스티븐 므누신 재무부 장관은 후폭풍을 우려해 말리고 있다는 얘기다.
트럼프 정부 내부 사정에 밝은 인터넷매체 액시오스는 1일(현지 시간) “온건파 참모들이 트럼프 대통령의 무역 전투 본능을 누그러뜨리기 위해 설득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어 “새로운 관세 부과가 타오르고 있는 주식시장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과, 물가 인상으로 연결돼 중산층의 소득 증대를 겨냥해 통과된 감세 효과를 반감시킬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제임스 매티스 국방부 장관과 렉스 틸러슨 국무부 장관도 관세 부과에 반대하고 있다고 이 매체는 보도했다. 특히 틸러슨 장관은 “불공정한 관행에 연루되지 않은 동맹국에까지 타격을 주는 광범위한 관세는 불필요하게 동맹과의 관계를 악화시킬 수 있는 나쁜 정책”이라는 입장이다.
하지만 강경파는 세계무역기구(WTO)가 무역 분쟁을 제대로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고 보고, 지식재산권 침해와 덤핑을 반복해 온 중국 등에 보복조치를 취할 수 있는 통상법 232조와 301조를 적용해야 한다는 태도를 굽히지 않고 있다. 232조는 ‘국가 안보에 위협을 줄 수 있는 수입 활동에 대해 수입량 제한 등의 조치를 내린다’는 내용이다. 알루미늄과 철강 제품이 대상이 되기 때문에 한국의 철강 수출에도 큰 영향을 줄 수 있다. 301조는 지식재산권 침해 등에 대해 포괄적 보복조치를 가할 수 있어 ‘슈퍼 301조’로도 불린다. 액시오스는 “트럼프 대통령이 중국의 광범위한 지식재산권 침해에 대한 보복 차원에서 중국 가전제품에 대한 관세를 부과하기 위해 301조를 부활시킬 가능성이 크다”고 보도했다.
2일(현지 시간) 백악관에서 롭 포터 백악관 비서실 차장 주재로 열리는 통상 회의가 G2 무역전쟁 여부를 결정하는 1차 분수령이 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이 회의에는 콘 위원장과 므누신 장관, 허버트 맥매스터 국가안보보좌관, 윌버 로스 상무부 장관, 나바로 위원장, 라이트하이저 대표 등이 모두 참석한다. 이 회의 결과는 5일 워싱턴에서 열릴 예정인 제1차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개정 협상의 향배에도 적잖은 영향을 줄 수 있다.
▼ 中 “우리도 당할수만은 없다” ▼
중국은 미국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무역전쟁에 돌입할 조짐에 정면충돌을 피하려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하지만 미국이 실제 징벌 조치를 취할 경우 가만있지 않겠다는 태도다. 또 트럼프 대통령이 무역문제와 연계한 북핵 문제에서 협력하는 모양새를 보여 왔지만 이제 북핵 문제에서도 협력 공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은 1일 신년사에서 올해가 중국의 개혁개방 40주년이라는 점을 강조하면서 시장 개방 기조를 확대하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이에 앞서 지난해 12월 시 주석 주재로 베이징(北京)에서 열린 중앙경제공작회의에서 중국 지도부는 “일부 품목에서 무역 균형을 이루기 위해 수입을 늘리고 수입 관세를 내리기로 했다”고 발표했다. 중앙경제공작회의는 한 해 중국의 경제정책 방향을 결정하는 회의다. 미중 무역 불균형 문제를 제기한 트럼프 대통령에게 “우리가 이렇게 노력할 것”이라고 답한 셈이다. 중국은 여러 계기 때마다 “협력만이 미중이 가야 할 길”이라고 언급하면서 무역 문제도 대화를 통해 풀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하지만 지난해 12월 트럼프 대통령이 국가안보전략 보고서를 통해 중국을 경쟁자로 규정한 이후 미중 충돌이 불가피하다는 회의론도 커지고 있다. 주영국 중국대사 출신의 마전강(馬振崗) 중국공공외교협회 부회장은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 인터뷰에서 “미국과 중국의 대결 시대가 온 것으로 보인다”며 “패권국(미국)이 기존 국제질서를 통제하면서 ‘중국의 위협’이라는 수사(修辭)에 불을 붙일 것이다. 중국의 부상은 어려운 과제와 도전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 워싱턴포스트(WP)는 “중국이 미국의 조치에 맞서 미국산 쇠고기 시장 개방을 철회하는 등의 카드를 쓸 것으로 보인다”며 “미중 간 첨예한 무역 충돌이 예상된다”고 전했다.
중국은 미국의 무역 질서와 경쟁하는 일대일로(一帶一路·21세기 육상과 해상 실크로드 프로젝트)를 내세워 미국과 대립 중인 러시아는 물론이고 미국의 핵심 동맹국인 일본과도 협력을 추진하면서 미중 갈등을 돌파하려는 움직임도 보이고 있다.
중국 공산당 기관지 런민(人民)일보 영문 자매지 글로벌타임스에 따르면 1일부터 중국과 러시아를 잇는 제2송유관이 가동을 시작했다. 글로벌타임스는 “러시아산 원유 수입이 연간 1500만 t에서 3000만 t으로 늘어날 것”이라며 “중-러 간 에너지 협력 강화를 통해 일대일로 구상이 더욱 탄력을 받을 것”이라고 전했다. 시 주석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에게 지난해 12월 31일 신년 인사를 보내면서도 “중국의 일대일로와 러시아의 유라시아경제동맹을 연계하는 중요한 초기 성과를 이뤘다”고 강조했다. 중국은 역사문제로 갈등해 온 일본과도 올해 중일 평화우호조약 체결 40주년을 계기로 정상의 상호 방문을 추진하고 있다. 관계 개선의 매개는 역시 일대일로 협력이다.
중국이 비교적 미국에 협력해 온 북핵 문제에서도 양국 갈등이 커지고 있다. 중국이 석유 밀무역을 방치했다는 트럼프 대통령의 비난에 대해 중국은 외교부 정례 브리핑을 통하여 “사실에 부합하지 않는다”며 정면으로 반박했다. 또 전문가들을 내세워 “미국이 마약 밀수를 막지 못하듯 북중 밀수 근절도 어렵다”는 논리를 펴기도 했다. 북핵 문제에서 미중의 협력 여지는 점차 사라져가고 있다. 이는 시 주석이 트럼프 대통령의 무역 압박에 대처할 카드 역시 거의 소진됐다는 뜻도 된다.
워싱턴=박정훈 특파원 sunshade@donga.com /조은아 기자 베이징=윤완준 특파원 zeitung@donga.com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