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군 당국이 한미 연합 군사훈련인 독수리훈련을 평창 겨울올림픽과 패럴림픽 대회 폐막(3월 18일) 2주 뒤인 4월 1일 시작하기로 사실상 확정한 것으로 8일 알려졌다. 훈련 기간은 예년처럼 두 달이며, 참가 전력 등 규모도 과거와 비슷한 수준이다.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이 신년사를 통해 평창 올림픽에 북한 대표단을 보낼 것을 시사하며 훈련 중단을 요구했지만, 북한의 핵 폐기나 도발 중단 없이는 훈련 중단은 물론이고 축소나 장기간 연기할 뜻이 없음을 분명히 한 것이다.
○ 한 달만 미룰 뿐, 훈련 기간과 규모는 그대로
복수의 정부 소식통에 따르면 한미 군 당국은 최근 양국 실무선에서 독수리훈련 기간을 4월 1일∼5월 30일로 조율했다.
이 기간에 키리졸브 연습 예비단계인 CMX(Crisis Management Exercise·위기관리연습)는 4월 18일부터 실시하고, 키리졸브 연습은 4월 23일부터 약 2주간 실시하는 것으로 의견을 모았다. 지난해 독수리훈련은 3월 1일∼4월 30일, 키리졸브는 3월 13일∼3월 24일 12일간 실시됐다. 독수리훈련은 핵항공모함과 전투기 등 한미 양국군 실제 장비와 병력이 동원되는 야외 기동훈련이다. 키리졸브 훈련은 북한의 남침으로 한반도에서 전면전이 일어날 경우를 가정해 반격, 미군 증원 등의 내용이 담긴 전시 작전계획을 컴퓨터 시뮬레이션을 통해 숙달하는 지휘소훈련이다.
당초 군 안팎에선 두 훈련이 패럴림픽 폐막 뒤 최소 한 달이 지난 4월 중순이나 말부터 실시될 것이란 전망이 많았다. 한미 정상이 4일 올림픽 후로 훈련 연기를 합의하자 훈련을 계속 연기하다가 8월 실시하는 또 다른 연합훈련인 을지프리덤가디언(UFG)과 합쳐 실시하는 식으로 대폭 축소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오기도 했다.
○ “선수 안전 위한 조치… 협상 카드 아냐”
그러나 예상과 달리 훈련 시기만 늦췄을 뿐 훈련 기간이나 규모 축소 없이 실시하는 것으로 합의됐다. 정부 소식통은 “독수리, 키리졸브 및 UFG를 합쳐서 실시하거나 기간, 규모를 축소하는 건 애초에 고려된 카드가 아니었다”고 했다.
앞서 미 백악관도 4일 훈련 연기를 합의한 한미 정상 통화 후 서면 브리핑을 통해 이번 결정이 전 세계 선수들이 모이는 올림픽의 안전을 보장하기 위해 훈련 기간과 올림픽 기간이 충돌하지 않도록(de-conflict) 하기 위한 조치라고 밝혔다. ‘안전 조치’ 이상도 이하도 아니고, 유화책으로의 선회는 더더욱 아니라며 확대 해석을 차단한 것이다.
지난해 11월 유엔이 만장일치로 채택한 평창 겨울올림픽 휴전 결의에 담긴 휴전 기간(2월 2일∼3월 25일) 일주일 뒤 곧바로 훈련을 실시하기로 결정한 데는 중국을 겨냥한 미국의 메시지도 담긴 것으로 보인다. 훈련 연기가 중국이 촉구하고 있는 ‘쌍중단’(북한 도발과 한미 연합훈련 동시 중단)을 일부나마 수용한 조치가 아니라 올림픽 안전을 확보하기 위한 조치일 뿐이라는 것이다.
○ 北 “훈련 중단 결정하라”며 판 엎을까
9일 열릴 남북 고위급 회담을 앞두고 한미 양국이 예상보다 일찍 훈련을 시작하기로 잠정 합의한 데는 북한이 회담에서 한미 연합훈련 중단을 요구할 것을 대비한 조치로 풀이된다. 한미 연합훈련은 북한의 올림픽 참가와 맞바꿀 대상이 아니며, 한반도 비핵화가 달성되지 않는 한 고강도 군사 압박을 지속할 것임을 분명히 한 뒤 회담에 임하겠다는 전략이다.
이 때문에 회담에서 북측이 훈련 중단 없이는 올림픽 참가도 없다며 판을 엎을 가능성도 제기된다. 김정은이 신년사에서 한미 연합훈련을 겨냥해 “외세와의 모든 핵전쟁 연습을 그만둬야 한다”고 언급한 만큼, 북측 대표들이 이를 어떻게든 관철시키려 사활을 걸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이에 우리 대표단은 오히려 미국 측이 연합훈련 연기에 합의하고, 이를 국제사회에 알리는 등 성의를 보였다는 점을 부각시킬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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