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적인 조립식 가구 브랜드 이케아(IKEA)의 창립자 잉바르 캄프라드가 27일(현지 시간) 자신의 고향인 스웨덴 남부 스몰란드의 자택에서 별세했다. 향년 91세.
캄프라드는 어렸을 때부터 사업가로서 두각을 드러냈다. 1926년 스몰란드에서 태어난 캄프라드는 5세부터 이웃들에게 성냥을 팔기 시작했다. 그 때 스톡홀름에서 대량으로 성냥을 싸게 구매해오면 약간의 마진을 붙여 팔아 이익을 낼 수 있다는 걸 깨달았다. 1943년 그는 17세의 나이로 이케아를 설립했다. 이케아라는 이름은 본인의 이름(Ingvar Kamprad), 그가 자랐던 가족 농장의 이름(Elmtaryd)과 지역 교구 이름(Agunnaryd)의 앞글자를 합친 것이다. 초반엔 펜, 지갑, 스타킹 등을 싸게 판매했으나 1948년부터 가구 판매에 집중했다.
이케아를 글로벌 가구기업의 반열에 오르게 한 ‘조립형 가구’의 아이디어는 1956년에 나왔다. 한 고객이 이케아에서 구매한 테이블을 차량 뒷좌석에 실으려 했는데 부피가 너무 커서 잘 들어가지 않자 직원이 테이블의 다리를 분리한 것이다. 이걸 본 캄프라드는 “공간을 절약해야 운송비용을 절약할 수 있다”는 걸 깨닫고 조립형 가구를 판매하기 시작했다.
이케아는 캄프라드가 평생 실천해온 ‘검소함’을 경영 철학으로 삼고 있다. 낡은 볼보 차량을 몰고 식당에 갈 때면 소금과 후추 봉지들을 챙겨왔다. 채소를 싸게 사려고 길거리 채소 시장이 파장하기 직전 방문하는 습관이 있다고 밝히기도 했다. 2016년 스웨덴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그는 “내가 지금 입고 있는 옷 중 벼룩시장에서 사지 않은 것이 없다”고 말할 정도였다. 그는 직원들에게도 “자원을 낭비하는 건 큰 죄”라며 절약하는 삶을 살라고 강조했다. 스웨덴의 높은 세율을 피해 1973년 덴마크로, 이후 스위스로 이주하다 2014년에 고국에 돌아왔다. ‘스크루지 삼촌’이라는 별명을 얻기도 한 그는 미국 경제전문지 포브스 선정 세계 부자 순위에 두 번이나 4위에 오르기도 했다.
하지만 성공한 사업가에게도 명암은 존재하는 법. 1940년대 나치를 옹호하는 단체에서 활동한 전력이 뒤늦게 드러나자 “인생의 가장 큰 실수”라며 이케아 임직원들에게 사과해야만 했다. 그는 자신이 알코올 중독자라는 점도 숨기지 않았다.
이케아를 세계적 가구 기업의 반열로 끌어올린 뒤 그는 2013년 이케아의 지주회사 회장직을 막내아들에게 물려주고 현업에서 물러났다. 위은지기자 wiz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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