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전통 의상을 입은 여성들이 슬리퍼를 아무렇게나 벗어놓고 료칸(일본 전통 여관) 다다미 위로 올라갔다. 기자가 직원의 안내에 따라 옆에 있는 버튼을 누르자 ‘삑’ 하는 신호음이 울리더니 슬리퍼 2쌍이 저절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먼저 슬리퍼 한 쌍이 곡선을 그리며 전진하더니 자리를 잡고 후진해 원래 있던 자리로 돌아갔다. 그동안 뒤쪽에 있던 다른 한 쌍이 역시 전진과 후진을 반복하면서 주차를 하듯 빈자리로 돌아갔다. 30초도 걸리지 않아 슬리퍼들은 마치 사람이 정리한 것처럼 나란히 정렬했다.
안내 직원은 “슬리퍼마다 칩과 바퀴, 모터가 내장돼 있다”며 “천장 카메라에서 촬영한 영상을 기초로 슬리퍼들이 서로 네트워킹하면서 우선순위를 정해 충돌을 피하며 돌아간 것”이라고 설명했다. 저절로 움직이는 슬리퍼를 지켜보던 관객 사이에서는 “마치 귀신에 들린 것 같다”는 반응이 나왔다.
닛산은 최근 인기 온천지인 가나가와현 하코네(箱根)의 300년 이상 된 여관 이치노유(一の湯)와 협업해 자동 주차 기능이 적용된 ‘미래형 료칸’을 선보였다. 공개한 동영상을 보면 슬리퍼는 물론이고 방석과 책상, 리모컨 등이 모두 저절로 이동하며 제자리를 찾아간다.
이는 지난해 10월 선보인 전기차(EV) 닛산 리프 신형에 내장된 ‘오토 파일럿 파킹’ 기술을 응용한 것이다. 차에 탄 채로 버튼을 누르기만 하면 핸들, 액셀, 브레이크 등을 자동으로 제어하면서 빈 공간에 주차해 주는 기능이다. 2010년 처음 출시된 리프는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이 팔린 전기차다.
갤러리에서 만난 60대 여성은 “아이디어가 기발했다. 실용화되면 여관 직원들의 수고를 많이 덜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첨단기술을 활용해 구인난을 극복하고 진화된 오모테나시(극진한 대접)를 제공할 수 있다는 발상이다.
최근 일본 자동차 회사들은 인구 감소와 자동차 소비시장에서의 젊은층 이탈로 위기감을 느끼면서 미래 먹을거리 찾기에 적극 나서고 있다. 도요타자동차는 고령자 증가 추세를 감안해 요양시설 등에서 쓸 수 있는 재활 로봇을 새 성장동력으로 육성하고 있다. 지난해 4월에는 10년 동안 개발한 재활 지원 로봇 ‘WW-1000’을 선보였다. 뇌중풍(뇌졸중) 등으로 하반신을 제대로 못 움직이는 이들이 보행 연습을 할 수 있도록 돕는 로봇이다. 균형을 잡는 재활 훈련을 돕는 로봇, 몸이 불편한 이들의 이동을 돕는 로봇 등도 개발했다.
지난해 말 도쿄(東京)에서 열린 국제로봇전시회에서는 섬세한 움직임을 재현하는 휴머노이드 ‘T-HR3’가 관심을 모았다. 사람이 고글과 컨트롤러를 착용하면 손가락의 미세한 움직임까지 로봇이 따라 할 수 있다. 재해 현장의 구조 활동, 가사 보조 등의 역할이 기대된다.
2000년 세계 최초로 두 다리로 걷는 인간형 로봇 아시모를 선보였던 혼다도 다양한 로봇을 개발 중이다. 지난달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가전전시회(CES) 2018’에서는 인공지능(AI)을 적용한 감정 인식 로봇과 의자형 이동식 로봇, 자율주행 로봇 등 4종을 한꺼번에 공개했다. 귀여운 외모와 뛰어난 성능으로 큰 화제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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