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자룡의 중국 살롱(說龍)]<20> 中 대륙서 ‘언론 자유’ 위해 분투하는 난팡주말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2월 12일 16시 0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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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팡주말 검열로 빠진 기사
난팡주말 검열로 빠진 기사

중국의 TV 라디오 방송은 물론 신문도 일간이든 주간이든 엄밀히 말하면 중앙 정부나 지방정부, 혹은 각급 당 기관, 공산주의청년단 등이 운영한다. ‘○○일보’라는 이름은 말 그대로 어느 정부나 당기관의 기관지이고, ‘○○상보’ ‘○○도시보’ ‘○○청년보’ 등은 기관지의 자매지로 재정적으로는 독립적일지라도 보도 논조는 철저한 통제를 받는다. 중국에는 민간 자본으로 운영되는 독립 언론사나 언론은 거의 없다고 보면 된다. 어느 언론이든 당 중앙선전부의 지침을 벗어나서는 존립할 수가 없다. 당국의 명시적 또는 묵시적 보도 지침을 따르지 않는 경우 편집장 낙마 등 바로 조치가 따른다.

이런 언론 환경에서 광둥(廣東) 성 정부 산하 주간지인 난팡(南方)주말의 ‘언론 자유의 외침’이 주목을 받고 있다. 난팡주말과 자매지 난팡도시보는 과거에도 몇 차례 ‘필화(筆禍)’를 겪은 적이 있다.

홍콩 밍(明)보와 중화권 매체 보쉰(博訊) 등에 따르면 난팡주말의 황허(黃河) 기자는 8일 자신이 작성한 기사가 검열에서 빠진 것에 항의해 자신의 웨이보(微博·중국판 트위터)에 기사 전문과 함께 취재 수기를 올렸다.

7일 제작돼 8일 발행될 지면의 9면과 10면 두 개면에는 원래 황 기자가 동료 왕웨이카이(王偉凱) 기자와 함께 취재한 두 편의 탐사보도 기사인 ‘하이항(海航·하이난 항공) 다시 유동성 위기’, ‘하이난항공 위기의 역사’가 게재될 예정이었다. 지면 제작까지 마쳤으나 검열에 걸려 실리지 못하자 황 기자는 5000자 안팎에 달하는 장문의 기사를 SNS에 올렸다.

하이난항공 입당 선서 재다짐 모임
하이난항공 입당 선서 재다짐 모임

황 기자는 “7일 밤 편집부로부터 고심해서 쓴 하이난 항공 기사가 제작까지 마친 상황에서 내려진다는 말을 듣고 8년 전 핑안(平安)보험 등에 대한 기사가 심야에 철회당해 분노하고 어찌할 바 몰랐던 때가 생각났다. 8년 전에는 반년 이상이나 (기자 게재를) 호소하고 기다렸으나 끝내 기사를 싣지 못했다”고 이번에 ‘거사’에 나선 심정을 밝혔다. 그는 “8년 후 다시 이런 상황을 당했으나 다시 기다리지 않고 취재해서 쓴 기사와 취재 수기를 직접 인터넷에 올리기로 했다”고 결의를 나타냈다. 그는 “중대하고 대중의 이익과 관련된 사실과 진상은 발생과 동시에 공중의 몫이다. 이를 공개하는 것은 기자의 천직이며 공민의 본분이다”고 밝히기도 했다.

황 기자는 취재수기에서 기사에 대한 판권을 포기해 다른 매체가 이 기사를 게재할 권리를 개방한다고 선언했다. 그는 동료들의 만류로 SNS에서 기사와 취재 수기를 삭제했으나 보쉰은 기사와 수기 전문을 공개했다. 이번 사태로 돤궁웨이(段功偉) 남팡주말 총편집(편집장)이 면직되고 전임자인 왕웨이(王巍) 남방잡지사 총편집이 다시 총편집을 겸임하고 있다고 밍보 등이 전했다.

난팡주말에 끝내 실리지 못한 두 기사는 최근 수년간 거침없는 국내외 인수합병(M&A)으로 재계 순위가 급성장한 하이항 그룹의 성장 과정, 자금난, 경영부실 문제 등을 다뤘다. 올 1분기에 150억 위안(2조5900억원)의 자금 부족에 직면, 상반기에 약 1000억 위안(17조3000억원)의 자산을 매각할 것이라며 과도한 부채에 의해 성장한 사업 방식이 중국 당국의 대출 규제 등으로 위기를 겪고 있다는 등의 내용이다. 이 회사 재정난 관련 내용은 블룸버그와 로이터통신 등이 지난달 말 보도하기도 했다. 최근 수년간 거침없는 해외 M&A로 미국 포천의 ‘글로벌 500대 기업’ 순위에서 170위에 오르는 등 급성장한 하이난항공그룹의 부실 문제를 정면으로 다룬 기사였다.

하이난항공 이사회 전펑(陳峰) 주석은 “대량의 인수합병 때문에 유동성 문제를 겪고 있으나 올해 은행 및 다른 금융기관의 지지를 얻어 유동성 부족 문제를 해결하는 데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말했다고 보쉰은 전했다.

하이항항공 집단은 9일 베이징(北京)에서 중신(中信)은행과 전략적 협력 협정을 맺어 은행측은 하이항항공에 200억 위안을 지원하기로 했으며 앞으로 ‘맞춤형 금융 서비스’를 제공 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또한 하이난항공은 7일 전국 139개 지사 회의실 등에서 동시에 회의를 갖고 입당 선서를 다시 외치며 충성을 다짐했다고 밝혔다.

한 국영 항공사의 재정난을 파헤친 기사를 중국 당국이 민감하게 여겨 게재를 막은 것은 왜일까. 바로 이 항공사가 미국에 도피 중이면서 중국 지도부의 부패를 폭로하고 있는 궈원구이(郭文貴) 정취안(政泉)홀딩스 회장이 지목한 회사이기 때문이다. 궈 회장은 특히 지난해 10월 중앙기율검사위원회 서기에서 물러난 왕치산(王岐山)의 부인과 하이난항공과의 관련설을 제기했다. 궈 회장은 “왕 전 서기 가족들이 이 회사 주식을 부정한 방법으로 취득했다”고 폭로했다. 왕 전 서기는 지난해 10월 19차 공산당 전국대표대회(당대회)에서 정치국 상무위원에서 물러났으나 다음달 전국인민대표대회(의회 격) 선출을 통해 다시 공직을 맡으며 복귀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왕치산 전 서기와 하이난항공
왕치산 전 서기와 하이난항공

1984년 광둥(廣東) 성 기관지 난팡일보의 자매지로 창간된 난팡주말은 개혁 성향의 보도로 유명하며 과거에도 몇 차례 당국의 검열에 저항했다.

2013년 신년호에서 난팡주말은 ‘중국의 꿈, 헌정의 꿈’이라는 제목의 신년사에서 헌법을 바탕으로 국민의 권력 견제와 권력 분산 등 정치 개혁을 단행할 것을 촉구했다. 하지만 당시 광둥 성 당국이 일방적으로 이 글을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을 찬양하는 글로 바꾸자 기자들 80여명이 집단 성명을 내고 파업을 벌였다. 당시에도 편집진이 대거 교체되면서 나흘만에 정상화되는 진통을 겪었다. 2009년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 방중 당시 중국 언론 중 유일하게 인터뷰를 했으나 당국의 불허로 해당 지면이 백지로 나간 적도 있다.

구자룡 기자 bonh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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