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짜뉴스에… 伊 총선 막판 홍역 백신 음모론 번져 ‘홍역’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3월 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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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퓰리즘 정당들 혼란 부추겨

이탈리아의 대표적인 팩트체크 사이트 ‘파젤라 폴리티카’를 운영하는 조반니 차니 대표가 최근 한 세미나에서 가짜뉴스의 심각성에 대해 얘기하고 있다. 조반니 차니 대표 제공
이탈리아의 대표적인 팩트체크 사이트 ‘파젤라 폴리티카’를 운영하는 조반니 차니 대표가 최근 한 세미나에서 가짜뉴스의 심각성에 대해 얘기하고 있다. 조반니 차니 대표 제공
“너무 많은 백신들이 아이들을 위험에 빠뜨리고 있다.”

10% 이상의 지지를 얻고 있는 이탈리아 극우 성향의 동맹당 마테오 살비니 대표는 최근 집권할 경우 지난해 국회에서 통과한 백신 의무 접종화 법안을 폐지하겠다고 공약했다.

총선(4일)을 코앞에 두고 때 아닌 백신 논쟁이 이탈리아 선거판을 달구고 있다. 포퓰리즘 정당이 가짜뉴스의 일종인 ‘음모 이론’을 부추기는 양상이다. 최근 수년 사이 이탈리아에선 “홍역 예방주사가 아이들의 자폐증을 야기한다”는 소문이 퍼지기 시작했고, 전체 예방주사에 대한 불신으로 번졌다. 로마 라사피엔차대의 안드레아 그리뇰리오 교수에 따르면 이 불신은 대안치료와 음모 이론에 예민한 비주류 지식인층에서부터 시작됐다. 특히 북부 지역을 중심으로 백신 거부 움직임이 본격화됐다.

그 결과 2016년 870건이던 이탈리아 홍역 발병이 지난해 5000건으로 급증하면서 이탈리아가 세계 6번째로 홍역이 많이 발생하는 국가가 됐다. 이에 정부 여당이 주도해 10가지 백신 접종을 의무화하는 법안이 지난해 7월 국회를 통과했고, 백신 회의주의자들은 ‘반백신주의자(anti-vaxxers)’ 이름으로 세력을 형성해 맞섰다.

총선은 해묵은 백신 논쟁을 수면 위로 끌어올렸다. 극우 동맹당과 극좌 포퓰리즘 정당 오성운동은 정부 여당을 공격하는 수단으로 이 논쟁을 적극 활용하며 불안감을 가중시켰다.

이탈리아 루이스대의 최근 여론조사에 따르면 ‘총선 이슈 중 가장 우선순위가 무엇이냐’는 질문에 유권자 22%가 백신 의무화 폐지를 꼽았다. 이민이나 실업 이슈보다는 낮지만 꽤 강력한 이슈가 된 것이다.

세계보건기구(WHO) 유럽 지국은 “백신을 맞지 않을 경우 이탈리아에서 홍역이 더 발생하고 죽음을 보게 될 것이 명확하며 다른 나라로 퍼뜨릴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팩트체크 전문사이트 ‘파젤라 폴리티카’의 조반니 차니 대표는 지난달 27일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이탈리아에는 4가지 유형의 가짜뉴스가 판치고 있는데 첫 번째가 바로 이번 백신 사건과 같은 음모 이론”이라고 말했다. 이어 “이번 총선에서 나오는 유형 중에는 수년 전 이민자가 저지른 범죄를 지금 발생한 것처럼 둔갑해 반(反)이민 정서를 증폭시키는 시간차 거짓말도 포함된다”고 지적했다. 파젤라 폴리티카는 국제팩트체킹네트워크(IFCN)의 유일한 이탈리아 회원사로, 2016년 12월 개헌 국민투표 당시 이탈리아 소셜미디어에 가장 많이 공유된 기사 10개 중 5개가 가짜였다고 발표해 주목받았다. 파젤라 폴리티카는 홈페이지에서 각 정당의 성명서와 주요 정치인 발언의 사실 여부를 점검해 매일 발표하며 유권자들의 정확한 선택을 돕고 있다.

페이스북은 그동안 미국, 네덜란드, 독일, 프랑스 선거 때 팩트체크팀을 운영했지만, 신고가 들어온 가짜뉴스만 점검하는 역할에 그쳐 가짜뉴스의 온상이라는 비판을 받아왔다. 페이스북은 이탈리아 총선을 겨냥해 파젤라 폴리티카와 손잡고 적극적인 팩트체커 역할을 하고 있다. 신고에만 의존하지 않고 팩트체크팀이 직접 가짜뉴스 적발에 나서고 있다. 파젤라 폴리티카는 지난 3주 동안 20개의 가짜뉴스를 적발했다. 페이스북 사용자가 가짜뉴스를 공유할 경우 팩트체크팀이 작성한 글이 함께 공유돼 유권자들의 주의를 환기시킨다.

차니 대표는 이번 총선에 반난민 정서를 겨냥한 가짜뉴스가 가장 많다고 지적했다. 최근엔 이탈리아 북부의 수녀들이 마약을 거래하고 있는 이민자 남자들을 때렸다는 가짜뉴스가 SNS에서 퍼지기도 했다. 다만 “아직 특정 정당이나 국가가 배후에 있다는 증거는 찾지 못했다”고 말했다.

이탈리아 정부도 이번 총선을 앞두고 가짜뉴스와의 전쟁을 벌이고 있다. 내무부는 가짜 뉴스신고 온라인 포털을 만들어 신고가 들어오면 경찰이 조사하도록 했고, 학교는 학생들에게 가짜뉴스 교육을 진행하고 있다. 언론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기업들도 가짜뉴스 적발에 적극적이다. 차니 대표는 “가짜뉴스는 언론과 정부, 시민들 간의 모든 신뢰를 깨뜨린다”며 “경각심을 가지는 건 긍정적인 신호지만 아직 갈 길이 멀다”고 말했다.

파리=동정민 특파원 ditt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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