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13일 “비핵화를 전제로 북한과 대화한다는 것을 (긍정적으로) 평가한다”며 “앞으로 한국과 긴밀히 협력하고 싶다”고 밝혔다. 남북 정상회담과 북-미 정상회담이 성사되는 등 빠르게 전개되고 있는 최근 한반도 대화 분위기에서 일본만 소외되지는 않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 예정 시간 훌쩍 넘기며 높은 관심
아베 총리는 이날 도쿄(東京) 지요다(千代田)구 총리관저에서 서훈 국가정보원장을 만나 “최근 남북 관계의 진전, 한반도 비핵화를 위한 변화의 움직임과 관련해 문재인 대통령의 리더십에 경의를 표한다”고 말했다. 남북 및 북-미 정상회담 관련 설명을 위해 일본을 방문한 서 원장은 “아베 총리가 남북·북-미 정상회담의 성과가 나도록 모든 협력을 하겠다고 말했다”며 이같이 전했다.
아베 총리는 이날 면담에서 “북한이 구체적인 행동으로 말을 실천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어 “핵·미사일 문제와 일본인 납치 문제 해결이 일본의 기본 방침”이라며 납북 일본인 문제를 남북 대화 과정에서 다뤄줄 것을 요청했다.
서 원장은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이 직접 비핵화 의지를 밝힌 것은 대단히 의미 있는 일”이라며 “평창 겨울올림픽을 계기로 시작된 한반도 평화의 물결이 좋은 흐름으로 이어지려면 한일 간 협력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문 대통령의 뜻을 전한다”고 말했다. 또 “이런 흐름은 아베 총리와 마이크 펜스 미국 부통령이 평창 겨울올림픽 개회식에 참석하는 좋은 분위기에서 시작됐다”며 감사의 뜻을 전달했다.
청와대는 이날 서면 브리핑을 통해 아베 총리가 서 원장에게 “북한이 남북 정상회담에 이어 북-미 정상회담이라는 큰 담판을 해야 하는 만큼 이 기회를 단순히 시간벌기용으로 이용할 것으로 보지 않는다”고 말했다고 밝혔다. 아베 총리가 북한의 대화 의지에 진정성이 있다고 평가한 대목이다.
이날 면담은 이례적인 일의 연속이었다. 당초 15분으로 예정됐으나 아베 총리가 비핵화에 대한 김정은의 진의, 북-일 관계에 대한 언급이 있었는지 등을 세세히 물어 예정 시간의 4배가 넘는 1시간 5분으로 길어졌다. 서 원장은 5, 6일 대북특사단의 일원으로 방북해 김정은을 만났고, 8∼11일에는 워싱턴을 방문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에게 김 위원장의 대화 희망 메시지를 전달했다.
고노 다로(河野太郞) 외상, 야치 쇼타로(谷內正太郞) 국가안전보장국장, 니시무라 야스토시(西村康稔)·노가미 고타로(野上浩太郞) 관방 부장관 등 아베 정권의 실세가 9명이나 배석한 것도 일본 측의 높은 관심을 반영한 것이다.
교도통신은 “일본 정부가 (서 원장의 설명을 들은 이후) 새로운 대북 정책 검토에 착수했다”며 “일본인 납치 문제 해결을 염두에 두고 북-일 정상회담의 실현 가능성을 살피는 방향”이라고 전했다. 관저 소식통은 “납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김정은과의 직접 대화가 불가결하다”며 북-일 정상회담 추진 의지를 드러냈다. 성사되면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총리와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2004년 정상회담 이후 14년 만이 된다.
서 원장에 대한 일본 측의 의전도 남달랐다. 아베 총리는 지난해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 강경화 외교부 장관 등을 만날 때 자신만 높은 소파에 앉아 상대방을 내려다봐 결례 논란이 일었다. 이번에는 자신의 의자와 동일한, 높고 화려한 의자를 서 원장에게 제공해 의자 차별 논란을 피했다.
○ 정의용 실장은 러시아 외교장관 만나
전날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을 면담한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은 이날 오후(현지 시간)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세르게이 라브로프 외교장관을 만났다. 정 실장은 방북·방미 결과를 설명하고 한반도 비핵화와 신북방경제 등 남북 경제공동체를 위한 러시아와의 협력 방안을 논의한 것으로 전해졌다.
다만 당초 추진했던 정 실장과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과의 면담은 성사되기 어려운 상황인 것으로 알려졌다. 청와대 관계자는 “러시아 대선(18일)이 임박해 푸틴 대통령을 직접 만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정 실장은 모스크바 방문을 끝으로 15일 귀국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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