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 “3연임-개헌 꿈 가물”
아키에(昭惠) 여사 “국회 소환 어쩌죠?”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가 악몽 같은 나날을 보내고 있다. 아베 총리와 부인 아키에(昭惠) 여사가 지방 사학재단의 국유지 헐값 매입 과정에 부당한 영향력을 발휘했다는, 이른바 ‘모리토모(森友) 스캔들’이 일파만파로 번지고 있기 때문이다. 당연한 것 같았던 9월 자민당 총재 3연임 도전에도 ‘빨간불’이 켜졌다.
아베 총리는 시종일관 “나는 관계없다”며 결백을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일본 관료사회 최고의 엘리트 조직인 재무성이 사학 스캔들 관련 공문서를 14건이나 조작한 사실이 이달 초 아사히신문의 단독 보도를 통해 드러나자 본인이 지시한 게 아니라면서도 결국 대국민 사과에 나섰다. 설상가상으로 15일 일본 언론은 ‘조작 전 문서’를 가지고 있던 국토교통성이 5일 관저에 문제의 문서가 조작됐을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했지만 관저가 이를 묵살했다고 보도했다.
여야는 공문서 조작 당시 재무성 국장이었던 사가와 노부히사(佐川宣壽) 전 국세청 장관의 국회 ‘환문(喚問·소환심문)’에 합의하고 이를 위해 19일 참의원 예산위원회에서 집중심의를 갖기로 했다. 6개 야당은 주요 참고인인 아키에 여사의 환문도 요구하고 있다.
○ 아사히가 당긴 모리토모 스캔들 방아쇠
오사카(大阪)의 사학재단 모리토모학원 문제가 세상에 알려진 것은 지난해 2월 8일 아사히신문 사회면 기사를 통해서다. 아사히 오사카판은 사회면 톱으로, 도쿄판은 사이드톱 기사로 다뤘다. 만에 하나의 상황을 우려했는지 기사는 학원재단의 이름을 익명으로 처리하는 등 신중하게 작성됐다. 기사 맨 끝에 이 학원재단이 새로 열 계획인 초등학교의 명예교장이 아키에 여사라고 기술해 아베 총리 부부가 관련됐을 가능성을 비쳤다. 이후 “왜 이 문제를 더 크게 다루지 않느냐”는 독자들의 항의가 빗발쳤다는 후문이다.
회기 중이던 국회도 나섰다. 야당은 연일 아베 총리에게 스캔들 관련 여부를 따졌다. 거듭된 부인에도 추궁이 계속되자 아베 총리는 지난해 2월 국회 답변에서 “나 또는 아내가 이 문제에 관여했다면 지금 당장 총리직은 물론이고 국회의원도 그만두겠다”고 공언하기까지 했다.
석 달 뒤 또 하나의 사학재단 스캔들이 터졌다. 아베 총리의 지인이 이사장으로 있는 가케(加計)학원이 일본에서 52년 만에 처음으로 수의학부 신설 허가를 받게끔 총리관저가 힘을 써줬다는 의혹이다. 이 또한 아사히신문의 단독 보도로 시작됐다. ‘2대 사학 스캔들’은 지난해 한때 아베 내각 지지율을 20%대로 끌어내리기도 했으나 지난해 10월 22일 중의원 선거에서 집권 여당이 압승하면서 일단 소강 상태에 빠졌다.
모리토모학원 스캔들은 첫 보도로부터 1년여 만인 이달 2일 아사히신문이 이 사건과 관련해 재무성이 국회에 제출했던 공문서가 조작됐다는 의혹을 제기하며 재점화됐다. 특혜를 시사하는 문구와 아키에 여사, 아소 다로(麻生太郞) 재무상 등의 이름이 삭제된, 꼼짝달싹할 수 없는 증거에 재무성은 12일 공문서 조작 사실을 인정했다. 이에 앞서 9일 사태의 책임을 지고 사가와 국세청 장관이 사직했다. 같은 날 문서 조작 당시 실무를 맡았던 재무성 소속 공무원이 최근 자살한 소식이 알려져 충격을 던졌다.
아베 총리와 아소 재무상은 문서 조작에 대해 “공무원들이 알아서 한 것”이라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이런 자세에는 자민당 내에서도 비판이 나오고 있다. 차세대 기수로 꼽히는 고이즈미 신지로(小泉進次郞) 수석부간사장은 “정치가 언제부터 공무원에게 모든 책임을 돌리게 됐느냐. 정치인이 책임을 져야 한다”고 비판했다.
○ 개헌 일정에 암운
치명상을 입은 아베 총리는 9월로 예정된 자민당 총재 선거에서도 힘겨운 싸움을 벌일 것으로 보인다. 총재 3연임에 성공하면 2021년까지 장기집권의 길이 열리지만 자민당 내에서도 비판이 속출하는 상황이다. 13일 발표된 산케이신문 조사에 따르면 ‘차기 총리로 어울리는 사람’에서 아베 총리와 대결 자세를 보여온 이시바 시게루(石破茂) 전 자민당 간사장이 급부상했다. 그는 한 달 전보다 8%포인트 오른 28.6%를 차지해 아베 총리(30%)를 위협했다.
아베 총리가 집념을 갖고 추진하는 개헌 일정에도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아베 총리는 올해 안에 개헌안 국회 발의를 목표로 자민당을 독려해 왔으나 개헌 동력은 약화될 수밖에 없다. 요미우리신문은 14일 “모리토모 스캔들로 ‘국민적 (개헌) 논의’를 벌일 만한 기운이 사라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사태가 걷잡을 수 없이 번지고 있지만 일본 정계는 당장 아베 정권이 무너지는 일은 없을 것으로 보고 있다. 다만 이번 파문의 중심 부처 수장인 아소 재무상은 적절한 시기에 교체가 불가피해 보인다. 일본 언론은 아소 재무상이 19일부터 아르헨티나에서 열리는 주요 20개국(G20) 재무장관 및 중앙은행 총재회의에 불참한다고 15일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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