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 파라오 못뽑는다” 이집트 젊은층 투표 외면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3월 28일 03시 00분


카이로 대선 투표 첫날 현장 르포
도로 20m마다 시시 대통령 사진… 경쟁후보 플래카드는 보기 힘들어
투표소 한산… 중장년층만 한표, 총 든 군인-경찰 삼엄한 경계

26일 카이로 시내 곳곳에 이집트 국기가 휘날렸다. 트럭에 올라탄 압둘팟타흐 시시 대통령(64)의 지지자들은 이집트 국가를 틀어 놓고 국기를 흔들었다. 거리의 시민들은 감흥 없는 표정으로 지지자들을 바라봤다. 이집트 대통령 선거 첫날의 풍경이다. 이집트에선 선거일을 공휴일로 지정하지 않고 사흘간, 오전 9시부터 오후 9시까지 투표가 진행된다.

대선 첫날인 이날 ‘얄라 시시’(시시와 함께 가자)라는 구호를 내건 플래카드가 도로 위를 점령했다. 카이로 주요 도로에는 20m마다 시시 대통령의 사진이 내걸렸다. 반면 시시 대통령의 유일한 대선 경쟁 후보인 무사 무스타파 무사 엘가드당 대표(66)의 플래카드는 거의 찾아볼 수 없었다.

선거 현장을 취재하기 위해 이집트 프레스센터에서 취재 허가증을 발급받은 뒤 카이로 남부 마디 지역의 한 투표소를 찾았지만 내부로 들어갈 수 없었다. 투표소 앞을 막아선 군인과 경찰은 “들여보낼 수 없다”고 했다. 지금 투표를 하는 시민이 없다는 이유에서였다.

기자가 투표소를 찾은 시간은 시민들이 투표소로 몰릴 것으로 예상되는 퇴근 시간대였는데도 투표소 앞은 적막했다. 두 번째로 찾은 투표소도 마찬가지였다. 시시 대통령 지지자들이 투표소 앞에 커다란 스피커를 가져다 놓고 투표를 독려하고 있었지만 투표소로 발길을 옮기는 시민은 드물었다. 이곳 역시 총을 든 군인이 투표소 내부 취재를 막았다.

그나마 투표소 규모가 큰 다르엘살렘 지역에서 투표 현장을 취재할 수 있었다. 이날 투표소를 찾은 유권자들의 연령대는 대부분 50대 이상이었다. 콥트교 사제복을 입은 미하일 이브라힘 씨는 “둘 중에 한 사람을 뽑는데 고민할 이유가 없다”며 “시시 대통령은 지난 4년 동안 이집트를 위해 많은 일을 해 왔다”고 말했다. 장년층 유권자들은 대부분 이집트의 ‘안정’을 위해 시시 대통령을 선택했다.

투표소 밖에서 만난 무스타파 사이드 씨는 “당연히 시시 대통령에게 투표했다”며 “그는 위기에 처한 이집트를 구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시시 대통령 지지 열기에 눈살을 찌푸리는 유권자도 있었다. 올해 스무 살의 모하메드 씨는 “투표소 앞의 시시 지지자들은 대부분 돈을 받고 동원됐다”고 지지자들을 비난했다. 그는 “권위주의 군부 정권의 거짓 선거에 투표할 생각이 없다”고 덧붙였다.

이집트에서는 2011년 시민혁명 이후 이듬해 대선을 통해 무슬림형제단 지도자 무함마드 무르시가 최초의 민선 대통령이 됐다. 그러나 지나친 이슬람 근본주의 정책과 경제난으로 대규모 반정부 시위가 일어났고, 2013년 7월 당시 국방장관이던 시시 대통령이 쿠데타를 일으켰다.

군부 과도정부는 이집트의 안정을 되찾겠다는 명목하에 무슬림형제단과 민주화세력을 철저히 탄압했다. 시시 대통령이 2014년 대선으로 정권을 잡은 이후 이집트의 민주주의는 ‘아랍의 봄’ 이전으로 뒷걸음질쳤다. 국제인권단체 휴먼라이츠워치(HRW)는 지난해 시시 정권의 엄혹한 인권 탄압 실태를 폭로하는 보고서를 공개하기도 했다.

시시 군부 정권이 다음 달 2일 이집트 선거관리위원회의 발표를 통해 4년 더 집권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 전문가들은 “만약 투표율이 2014년 대선(47.5%)보다 낮을 경우 시시 정권의 국정 동력은 크게 약화될 수 있다”고 전망했다.

카이로=박민우 특파원 minwo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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