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에게 한반도 비핵화와 관련해 남북과 미중의 4개국 평화협정 체결을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이 남북미 3국 정상회담을 대체할 4자회담 카드를 들고나오면서 미중 주요 2개국(G2)의 한반도 비핵화 논의가 문재인 대통령의 북핵 구상에 변수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
시 주석은 지난달 9일 트럼프 대통령과의 통화에서 남북과 미중 등 4개국이 참여하는 평화협정 체결을 포함해 ‘새로운 (한반도) 안전보장의 틀’을 제안했다고 일본 교도통신이 1일 보도했다. 통화는 트럼프 대통령이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의 북-미 정상회담 제안을 수락한 다음 날 이뤄졌다. 트럼프 대통령은 시 주석의 제안에 답하지 않은 채 중국에 대북 압박을 유지할 것을 요청했다고 한다.
이는 중국이 주장해온 ‘쌍궤병행(雙軌竝行)’을 좀 더 구체화한 제안으로 풀이된다. 중국은 북한의 비핵화 프로세스와 한반도 평화협정이 같이 진행돼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이번 제안은 1953년부터 이어진 휴전협정 체제를 종식하는 종전선언과 평화협정 체결에 중국이 당사국으로 참여해야 한다는 것이다. 시 주석은 ‘정전 65주년’에 맞춰 7월 26일 북한을 방문할 것이란 관측이 나오는 등 한반도 비핵화 문제에 대해 중국의 영향력을 높이기 위한 움직임을 가속화하고 있다.
시 주석의 4자회담 카드는 남북, 북-미 정상회담에 이어 남북미 3개국 정상회담을 통해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을 위한 종전선언을 검토하고 있는 문재인 대통령의 구상과는 결이 다르다.
청와대는 중국의 개입에 긍정적이면서도 시 주석이 제안했다는 4자회담을 통한 남북미중 평화협정 체결 구상에는 신중한 반응을 보였다. 중국이 평화협정의 당사국이 맞느냐는 말도 나온다. 청와대 관계자는 “중국이 종전선언과 한반도 평화협정 체결 당사국 권리가 있는지는 좀 더 검토가 필요할 수 있다”며 “1974년 북한이 미국에 미군 철수 조건부 남북평화협정을 제안하는 과정에서 중국이 정전협정 당사국의 권리를 북한에 맡긴 상황”이라고 말했다. 중국이 정전협정에 참여했다고 해서 자동으로 종전선언 당사국이 되는 것은 아닐 수 있다는 얘기다.
청와대는 북-미 간 비핵화 해법의 간극을 메울 새로운 해법을 마련하는 데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북한이 미국의 선(先) 핵 포기-후(後) 보상의 ‘리비아식’ 해법을 받아들일 수 없다는 뜻을 분명히 한 만큼 미국이 원하는 북핵 포기와 북-미 수교를 원하는 북한의 요구를 절충할 로드맵을 중재하는 게 우선이라는 얘기다. 또 다른 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지금은 누가 해법을 내도 포괄적, 단계적 해법이 될 수밖에 없다”며 “비핵화와 북-미 관계 정상화를 포함한 포괄적 합의를 정상 간에 도출하되 단계적으로 이행하는 방안을 마련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트럼프 대통령이 북핵 해법과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및 방위비 협상을 연계해 한국을 압박하고 나선 것에 대해 백악관과 청와대의 긴밀한 핫라인 재구축이 시급하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과 허버트 맥매스터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이른바 ‘정-맥 라인’을 통해 수시로 전화 통화를 하며 양국 이슈를 조율해왔다. 하지만 존 볼턴 신임 보좌관이 9일부터 맥매스터 보좌관을 대체하기로 하면서 청와대는 곧 자리를 떠날 맥매스터와도, 그렇다고 볼턴과도 깊이 있는 논의를 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여기에 렉스 틸러슨 전 국무장관 후임으로 지명된 마이크 폼페이오 전 중앙정보국(CIA) 국장도 의회 인사청문회 등을 통과한 뒤에야 제대로 접촉할 수 있는 상황이다. 그래서 청와대 안팎에서는 한미 간 불협화음을 차단하기 위해 하루라도 빨리 한미 정상회담을 개최해야 한다는 말이 나온다.
이런 상황에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는 지난달 30일(현지 시간) 북한의 불법적인 유류 및 석탄 밀수와 관련해 선박 27척과 운송 및 무역회사 21곳, 기업인 1명을 제재 명단에 추가하는 역대 최대 규모의 대북제재 리스트를 발표했다. 트럼프 행정부의 대북제재 기조를 충실히 담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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