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아프리카공화국의 ‘국모(國母)’로 불리는 반(反)인종차별 운동가 위니 마디키젤라 만델라(사진)가 2일 81세로 사망했다. 남아공 최초의 흑인 대통령인 넬슨 만델라(1918∼2013)의 전 부인으로 흑인 인권을 위해 일생을 바쳐 투쟁해 존경을 받았지만 말년에는 각종 비리와 범죄에 연루돼 명성을 스스로 퇴색시켰다는 평가도 받는다.
위니 마디키젤라 만델라의 가족들은 이날 성명을 통해 그가 남아공 요하네스버그의 넷케어 밀파크 병원에서 숨을 거뒀다고 발표했다고 AP통신이 보도했다. 가족들은 “위니 마디키젤라 만델라는 아파르트헤이트(흑백 인종 분리 정책)에 맞선 가장 위대한 아이콘 중 하나였다”고 밝혔다.
마디키젤라 만델라는 흑인차별과 여성차별 철폐를 위해 분투한 남아공의 대모다. AP통신은 “마디키젤라 만델라는 38년에 이르는 만델라와의 결혼 생활 동안 거물인 남편의 그늘에서 벗어나고자 노력하면서 흑인 소수자 인권을 위해 투쟁했다”고 평했다. 그의 굴곡 많은 인생은 2013년 ‘위니 만델라: 인생’이란 영화로 제작되기도 했다.
마디키젤라 만델라는 현재 요하네스버그에 속하는 동부 케이브 지역에서 최초의 흑인 여성 활동가로 이름을 알렸다. 그는 흑인 거주 지역에서 영유아 사망률이 유독 높은 현상을 연구하다가 인종차별로 인한 빈곤 문제가 원인임을 알게 됐고, 이로써 정계에 진출해야겠다고 다짐한다. 그는 21세이던 1957년 당시 18세 연상의 신예 변호사이던 만델라를 만나 사랑에 빠졌다. 당시 부인과 이혼하고 마디키젤라 만델라를 둘째 부인으로 맞은 만델라는 생전에 “위니는 내게 희망을 줬고 인생에서 두 번째 기회를 잡았다는 느낌을 줬다. 그녀를 사랑한 덕에 투쟁할 힘을 얻게 됐다”고 회고했다.
그는 인종차별 운동을 이끌던 남편이 수감된 27년 동안 두 딸을 낳아 홀로 기르면서도 온갖 핍박을 견뎌야 했다. 아프리카민족회의(ANC) 당원으로서 ANC 여성동맹을 창립하는 등 정치활동을 하다 당국에 잡혀 유배를 가야했다. 흑인여성 차별 반대 시위에 참가했다가 임신한 몸으로 2주간 옥살이를 하기도 했다.
차별 철폐를 위해 헌신한 그의 인생 말년은 각종 스캔들로 얼룩졌다. 1985년 유배에서 돌아온 그는 “더 이상의 평화 시위는 없다”며 극단적 폭력을 선택했다. 그는 불에 타는 타이어를 경찰과 정보원들 목에 걸어 살해하는 방식으로 군중을 선동했다는 혐의를 받았다. 또 ‘만델라연합축구클럽’을 이끌며 클럽 멤버들이 14세 운동가 스톰피 세페이를 사망시켰다는 의혹을 받아 6년형을 받았다. 1992년엔 경호원과 바람을 피웠다는 이유로 법정 분쟁 끝에 만델라 전 대통령과 이혼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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