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고 빠지기’ 김정은 vs ‘들었다 놨다’ 트럼프… 통할까 부딪칠까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5월 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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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급물살 타는 北-美회담]담판 앞둔 두 정상 협상스타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올해 신년사에서 “내 책상 위에 핵단추 있다”고 위협하고,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난 더 크고 강력한 단추가 있다”고 맞받아쳤을 때 국제사회의 우려는 절정에 달했다. ‘리틀 로켓맨(김정은)’과 ‘빅 로켓맨(트럼프)’의 유치한 말싸움이 자칫 핵전쟁으로 옮겨갈 가능성이 있었기 때문.

그랬던 이들이 이달 안에 한 테이블에 마주 앉을 게 확실시되고 있다. 그동안 서로를 향해 쏟아냈던 날선 발언들은 이젠 회담에서 우위를 점하기 위한 치열한 신경전으로 변했다. ‘세기의 핵 담판’을 앞둔, 아버지(72)와 막내아들(34)뻘 두 정상의 협상 스타일을 살펴본다.

○ ‘뼛속까지 협상가’ 트럼프 vs ‘예상보다 노련한’ 김정은

남북 정상회담을 지켜본 워싱턴 정가엔 김정은이 생각보다 만만찮은 상대라는 인식이 급속히 확산되고 있다. 아무데서나 담배를 물고, 부하에게 욕설을 내뱉을 줄로만 알았던 김정은이 준비된, 심지어 노련한 협상가의 모습을 보여줬기 때문. 골초이면서도 흡연 욕구까지 자제하며 세련된 매너로 상대에게 어필하려 했다.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절대 권력자인 만큼 일반 국가에선 상상하기 어려운 파격과 순발력은 김정은의 강점이다. 남북 정상회담에서 문재인 대통령과 함께 북측으로 군사분계선을 넘어가거나, 평양 표준시를 단박에 제자리로 되돌린 게 대표적이다.

한 대북 전문가는 “국내 언론 보도까지 꼼꼼히 챙기는 게 눈에 띄었다. 처음 만난 상대방에게 ‘나는 당신을 잘 알고 있다’는 메시지를 건네는 노련한 모습”이라고 전했다. 이동우 상계백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지금 보니 김정은이 지난 2년간 미치광이처럼 행동한 건 지금 극적인 스포트라이트를 받기 위한 전략인 것 같다”고 평가했다.

김정은의 상황 판단과 학습력이 예상보다 빠르다는 분석도 잇따르고 있다.

미 중앙정보국(CIA)의 대북정보분석관을 지낸 정박 미 브루킹스연구소 한국석좌는 최근 낸 ‘김정은의 교육’이란 보고서에서 “그는 공격적이기는 하나 무모하거나 ‘미친 사람’은 아니다. 미 정보 당국이 갖고 있던 김정은에 대한 편견을 급히 수정하고 있다”고 말했다.

‘거래의 기술’ ‘승자의 생각법’ 등을 펴낸 트럼프는 지지 여부를 떠나 협상만큼은 전 세계 정상 중 최고 수준이다. 그의 특기는 정신 못 차릴 정도로 상대방을 뒤흔들며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어내는 것이다.

트럼프는 지난달 27일 남북 정상회담 후 “한국전쟁은 끝날 것”이라면서 문 대통령뿐만 아니라 김 위원장의 공로를 치켜세웠다. 그러면서 지난달 26∼28일(현지 시간) 사흘 연속 “(북-미 정상회담) 결과가 좋지 못하다면 회담장을 떠나겠다”고 으름장을 놓고 있다. 트럼프는 아직 국제정치 무대 경험이 부족한 김정은에게도 협상에 들어서기 전까지 ‘냉온탕’을 번갈아가며 흔들어 놓을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최근엔 ‘로켓맨’ 등 지난해 사용하던 과격한 표현을 자제하면서 ‘훌륭하다’는 말을 반복하는 만큼 회담이 시작되기도 전에 판을 깰 정도로 나가지는 않을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 회담 초반이 ‘골든타임’ 될 듯

뉴욕타임스는 트럼프와 김정은 모두 ‘통념적인 생각’을 넘어서는 인물이라고 표현했다. 과정보다 결과, 형식보다 내용을 중시하는 실용주의자란 얘기다. 트럼프와 김정은이 처음 만나고 공통점이 거의 없지만 이런 기질 때문에 회담이 의외의 성과를 낼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38세의 나이 차가 나지만 친근감이 형성되지 말란 법도 없다. 부동산 재벌가 아들(트럼프)과 현대판 세습 왕조의 아들(김정은)로 각각 아쉬울 것 없이 자란 ‘금수저’와 ‘핵수저’다. 이들은 또한 농구(김정은)와 골프(트럼프)를 좋아하는 스포츠 마니아이기도 하다.

안세영 성균관대 국제협상전공 특임교수는 “정상회담 때 트럼프 대통령은 ‘파이트백(fight-back)’ 전술로 김정은을 몰아치다 어느 순간 김정은을 치켜세우며 결정적인 과실을 따내려 할 것”이라며 “트럼프 대통령은 ‘강온 전략’ 수행 능력으로만 보면 역대 미 대통령 중 최고 수준”이라고 평가했다. 그렇다고 김정은이 트럼프에게 주눅들 것으로 보는 시각도 별로 없다. 이동우 교수는 “지난 2년 동안 반전을 거듭한 김정은의 발언과 행동을 종합하면 냉혹한 정치인이자 심지어 안정적인 협상가로 보인다”고 말했다.

다혈질인 두 사람의 기질로 봤을 때 전문가들은 초반 기싸움에서 협상의 결과가 좌우될 것으로 보고 있다. 일반인은 따라하기도 힘든 각진 글씨체까지 닮은 두 정상의 스타일상 마주 앉은 후 첫 몇 시간이 ‘골든타임’이 될 수 있다는 것. 실제로 남북 정상회담도 오전 회담에서 대부분의 합의가 이뤄졌다. 트럼프가 김정은의 비핵화에 대한 ‘진심’을 초반에 확인한다면 삽시간에 세계를 놀라게 할 ‘슈퍼 빅딜’이 나오지 말란 법도 없다는 얘기다.

신진우 niceshin@donga.com·손효주 기자
#북미 정상회담#김정은#트럼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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