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좌 오성운동-극우 동맹당
24시간 추가협상 합의 임박… 걸림돌 베를루스코니 뒤로 빠져
유럽 기성정치 몰락에 충격… 親러-反EU 성향 파장 클 듯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유럽 주요 국가 중 가장 강력한 포퓰리즘 정권 탄생이 이탈리아에서 임박했다. 이탈리아의 반체제 정당인 극좌 오성운동과 극우 동맹당의 연정 합의가 초읽기에 들어갔다.
오성운동과 동맹당은 10일 “양당 간의 협상이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으며 곧 마무리될 수 있을 것”이라며 “정부 구성과 총리 선정 협상에도 명확한 진전이 있다”고 발표했다. 세르조 마타렐라 대통령은 3월 4일 총선 이후 9주 동안 연정 협상이 교착에 빠지자 7일 각 정파의 수장들을 대통령궁으로 불러 최종 면담하면서 중립적인 인사에게 총리를 맡겨 연말까지 정부를 이끌게 하는 방안을 대안으로 제시했다. 내년 예산 처리, 선거법 개정 등 시급한 현안을 처리한 뒤 내년 초에 조기 총선을 실시하자는 것이다.
이에 따라 9일 중도 내각을 이끌 총리를 발표할 계획이었으나 오성운동과 동맹당 대표가 24시간 추가 협상 시한을 요청하면서 상황이 급변했다. 두 정당은 중립 내각이 아닌 7월 8일 재선거를 한목소리로 주장해 왔다.
3월 총선에서 32%를 득표해 1당이 된 오성운동과 37%로 가장 많은 표를 얻은 정치세력인 우파연합을 이끈 동맹당(18% 득표)은 오랫동안 연대를 논의해 왔다. 하지만 전진이탈리아당을 이끄는 실비오 베를루스코니 전 총리의 연정 참여에 대해 의견이 갈려 진전이 없었다.
오성운동은 부패의 상징인 베를루스코니 전 총리는 절대 연정의 파트너가 될 수 없다는 뜻을 명확히 했지만 동맹당은 우파연합을 저버릴 수 없다고 버텼다. 그러나 베를루스코니 전 총리가 9일 “동맹당이 주도하는 오성운동과의 연정에 거부권을 행사하거나 선결조건을 부과하지 않겠다”며 뒤로 빠질 뜻을 밝혔다. 전진이탈리아당 내에서는 지지율이 계속 하락세라 재선거를 할 경우 오히려 의석이 줄어들 것이라는 우려가 컸다. 이탈리아 정계에서는 “이제 베를루스코니의 시대는 정말 끝났다”는 말이 나오고 있다.
반체제 정당들의 집권 임박에 유럽은 충격에 휩싸였다. 지난해 12월부터 오스트리아 극우 정당인 자유당이 우파 국민당이 이끄는 연정의 일원으로 참여하고는 있지만 유럽연합(EU) 경제규모 3위인 이탈리아에서 포퓰리즘 정권이 탄생하는 것은 충격의 강도가 완전히 다르기 때문이다. 지난해 프랑스에서 처음으로 좌우 기성정당이 아닌 제3의 정치세력에서 대통령이 배출된 데 이어 이탈리아에서 반체제 포퓰리즘 정권 탄생이 임박하면서 유럽 기성정치 몰락에 따른 불확실성이 커지고 있다.
게다가 두 정당은 좌우 색채는 다르지만 EU 통합에 부정적이라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과거에 유로존 탈퇴를 공약으로 내건 경험도 있다. 특히 같은 우파연합 속 친EU 성향인 전진이탈리아당의 요청으로 반EU 성향을 억누르고 있던 동맹당이 오성운동과 결합할 경우 2016년 브렉시트(영국의 EU 탈퇴) 악몽이 재연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또 두 정당은 모두 러시아에 대한 경제제재에 반대하는 친러 성향이다. 이들의 집권이 현실화되면 프랑스 독일 영국 이탈리아의 대러 제재 공조에 틈이 생길 수 있다.
이탈리아 기업가나 투자가들 사이에서도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3월 총선에서 우파 동맹당은 단일세율을 15%까지 낮추겠다는 감세를, 좌파 오성운동은 매월 780유로(약 100만 원)의 기본소득을 지급하겠다는 공약을 내걸었다. 두 정당의 결합이 어떤 경제 정책으로 이어질지 누구도 예측하기 힘들다는 평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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