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일 치러진 말레이시아 총선 승리로 15년 만에 총리직에 복귀한 마하티르 모하맛(93)은 2003년까지 22년 동안 이 나라를 철권 통치했던 건국 이후 최장기 집권자였다.
그를 총리 후보로 내세웠던 신야권연합 희망연대(PH)는 10일 개표 결과 하원 222석의 과반인 113석을 확보했다. PH와 협력 관계인 보르네오섬 사바 지역 정당 와리산도 8석을 확보했다.
반면 통일말레이국민기구(UMNO)를 주축으로 한 13개 정당 연합체 국민전선(BN)은 기존 131석보다 52석 적은 79석을 얻는 데 그쳤다. 1957년 말레이시아가 영국으로부터 독립한 후 BN이 집권여당 지위를 잃은 건 처음이다.
총선 전 마하티르의 총리직 재탈환 가능성에 대해 부정적 전망이 우세했다. 총선을 앞두고 나집 라작 전 총리는 자신의 비자금 스캔들에 대한 언론 보도를 법으로 막았다. 또한 총 득표에서 야권이 앞설지라도 최대한 여당에 유리한 결과가 도출되도록 선거구를 다시 획정했다.
하지만 PH가 집권여당의 전통적 지지 기반이었던 농촌 지역에서도 우세를 보이며 의외의 결과가 나왔다. 나집 전 총리를 비롯한 여권 수뇌부의 부정부패 스캔들, 경제 침체로 인한 생활고에 대한 불만이 판세 뒤집기의 동력으로 작용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마하티르는 2003년 자진 퇴임 후 7년 만에 정치 무대에 돌아와 취임 초기였던 나집의 후견인을 자처했다. 그러나 나집의 비자금 게이트가 터지자 총리 퇴진 운동을 벌이다가 BN에서 축출됐다. 이후 통일원주민당(PPBM)을 창당하고 극우 성향 야당인 민주행동당(DAP), 인민정의당(PKR)과 함께 PH를 형성했다.
마하티르는 10일 현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우리는 복수를 추구하지 않는다. 우리가 원하는 것은 법치의 회복이다. 법을 어긴 자는 법정에 서야 한다”고 말했다. 부정부패 스캔들에 대한 재수사 가능성을 시사한 발언으로 해석된다.
마하티르는 싱가포르의 킹 에드워드 7세 의과대학(현 싱가포르국립대 의학부)을 졸업한 의사 출신 정치인이다. 1957년 32세 때 정치에 입문해 1963년 말레이시아 연방정부와 대립하던 싱가포르의 리콴유 주정부 수반을 강하게 비판하며 대중적 인기를 얻었다.
1981년 집권한 그는 “동아시아 국가들을 본받자”는 ‘룩 이스트(Look East)’ 정책, “2020년까지 말레이시아를 선진국으로 만들겠다”고 천명한 ‘와와산 2020’ 정책 등 여러 경제정책을 적극 추진해 국민의 지지를 굳혔다. 반대 세력의 반발을 교묘히 억누르며 22년간 총리 자리에 머물며 근대화를 이뤄내 ‘나라를 신흥 중진국으로 도약시킨 국부(國父)’와 ‘권력욕에 대한 집착을 버리지 못하는 독재자’라는 상반된 평가를 받았다.
그러나 이번 총선 승리 이후 100세를 바라보는 마하티르의 정치 행보가 순탄치만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집권당 탈환을 위해 손잡은 DAP와 PKR가 반(反)이민, 반이슬람 정책을 지지하고 화교(중국인)에 대한 우대 성향을 가진 극우 성향 정당이기 때문이다.
투옥 중인 야권의 실질적 지도자 안와르 이브라힘 전 부총리가 다음 달 석방을 앞둔 것도 변수다. 안와르가 곧 복권돼 총리직을 이양받을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안와르는 1998년 아시아 금융위기 대책을 놓고 마하티르와 갈등을 빚다 실각한 뒤 부패, 동성애 사범으로 몰려 투옥됐다. 마하티르와 안와르는 정권교체를 위해 최근 화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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