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한 달 앞으로 다가온 북-미 정상회담에 대해 “큰 성공을 거둘 것”이라며 연일 낙관적인 전망을 내놓고 있다. ‘과거와 다른’ 비핵화의 프로세스를 담을 ‘싱가포르 선언’에 대한 자신감을 내비치고 있는 것이다.
북-미는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에게 전한 대북제재 완화 등 ‘새로운 제안’을 바탕으로 비핵화와 체제 안전 보장을 맞바꾸는 합의문의 윤곽에 대강 합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단계별 경제 보상 문제 등 ‘디테일의 악마’를 놓고 치열한 힘겨루기에 들어갈 것으로 보인다.
○ 美, 대북 금융제재 해제 제시한 듯
11일 복수의 외교 소식통에 따르면 북-미는 정상회담 발표 직전에 김정은의 ‘단계적·동시적 비핵화 구상’과 트럼프 대통령의 ‘영구적 핵폐기’를 절충한 방안을 마련한 것으로 전해졌다. 백악관은 10일(현지 시간) “미북 정상회담에서 최우선 과제는 CVID(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불가역적인 비핵화)”라고 밝혔다. 백악관이 김정은과 회동을 통해 ‘영구적 비핵화(PVID)’에서 ‘완전한 비핵화(CVID)’로 비핵화 요구 수위를 한 단계 정도 낮춘 것 아니냐는 해석이 가능한 대목이다.
특히 김정은이 폼페이오 장관을 통해 받은 미국의 ‘새로운 제안’이 정상회담 성사에 핵심적인 역할을 한 것으로 보인다. 폼페이오 장관은 ‘비핵화의 밝은 미래’로 북한의 경제 개방을 위한 구체적인 조치를 논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CVID의 신속한 달성을 조건으로 금융제재 등 미국의 독자제재를 해제하는 것은 물론 미국과 선진국의 대북 투자 가능성을 제시했다는 것이다.
헤더 나워트 미 국무부 대변인은 이날 언론 인터뷰에서 “북한도 개방된 사회를 가질 수 있고 자본시장에 접근할 수 있다는 게 폼페이오 장관과 김정은 위원장이 논의한 내용”이라고 했다. 현재는 미국의 금융제재로 북한은 미 달러를 기축통화로 하는 국제금융결제 시스템에 대한 접근이 원천 차단돼 있다. 북한과 거래하는 외국 기업과 개인들 역시 미국의 금융망을 이용할 수 없도록 퇴출되는 만큼 사실상 북한은 세계 금융시장에서 완전히 배제된 상황. 이 때문에 평양으로 들어가는 돈줄이 줄어들면서 중국 위안화, 러시아 루블화 등으로 달러 공급을 대체했다는 관측도 나왔다.
하지만 트럼프 행정부가 금융제재를 완화하면 한국과 미국이 북한에 투자할 수 있는 길이 열리게 된다. 북한은 개성공단이 열렸을 때 한국 정부에 미국 기업 유치를 요청했을 정도로 미국의 대북 투자를 오랫동안 희망해 왔다. 미국의 기업과 자금이 북한에 들어와 있다는 것 자체로 북한이 ‘정상국가’로 인정받을 수 있고, 미국의 군사적 선제 타격의 표적에서도 해방될 수 있기 때문이다. 동시에 일각에선 미국이 워싱턴-평양에 연락사무소 개설 수준의 약속을 해줬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한 정부 소식통은 “양국에 대사관 설치까지 합의했을 가능성도 크다”고 했다.
○ 단계적 보상 놓고 힘겨루기 예고
김정은은 비핵화를 위한 대가 중 하나로 미군의 한반도 전략자산 전개 중지를 언급했을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이와 관련해 트럼프 대통령은 10일(현지 시간) “가장 자랑스러운 업적은 한반도 전체의 비핵화가 될 것”이라고 했다. 과거에 자주 썼던 ‘북한 비핵화’란 표현 대신 ‘한반도 전체’라는 개념을 강조한 것. 미국이 군사적 위협 해소를 요구하고 있는 북한에 비핵화를 전제로 한미 연합 군사훈련에 핵무기를 실을 수 있는 전략자산 전개 중단은 물론 북한에 대한 핵 선제공격 금지를 약속했을 수도 있다는 것. 다만 북-미는 단계별 보상에 대해서는 이제 세부 논의를 시작해야 하는 단계인 것으로 보인다. 또 가능한 한 빠른 경제 지원을 요구하는 북한과 달리 미국은 이를 후순위로 미룬 것으로 알려져 ‘경제적 보상’이 향후 회담 의제 조율의 뇌관이 될 가능성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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