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과 미국이 일주일 앞으로 다가온 북한의 풍계리 핵실험장 폐기에 전문가 사찰단 파견 여부를 놓고 다른 목소리를 내면서 ‘비핵화 시작 단계’부터 미묘한 신경전이 벌어지고 있다. 북한이 주도하는 선전장이 될 것으로 보이던 풍계리 핵실험장 폐기가 북한의 비핵화 검증 의지를 가늠할 리트머스 시험지가 된 것. 특히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마치 비핵화 협상 전쟁에서 이긴 ‘승전국’ 같은 태도를 보이는 것은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전한 것으로 알려져 미국의 밀어붙이기식 비핵화 압박에 순순히 응하지만은 않을 태세다.
○ 풍계리 폐기 검증 이견 보인 北-美
통일부는 15일 “북측이 판문점을 통해 보낸 통지문에서 23일부터 진행될 북부(풍계리) 핵실험장 폐기의식에 남측 1개 통신사와 1개 방송사의 기자를 4명씩 초청한다고 알려왔다”고 밝혔다. 당초 김정은이 언급했다는 전문가는 초청 대상에서 빠진 것이다.
핵실험장 폐기 검증을 위해 전문가 파견 의사를 밝힌 유엔 산하 포괄적핵실험금지조약기구(CTBTO)도 북한으로부터 아직 초청을 받지 못했다고 14일(현지 시간) 자유아시아방송(RFA)에서 밝혔다.
그러나 북한은 핵시설 폐쇄를 제한적인 범위 내에서 진행하겠다는 의지를 굳히고 있다. 미국의 북한 전문매체 38노스는 북한이 이달 초부터 이미 핵실험장 폐기 절차를 시작했다고 분석했다. 38노스는 7일 촬영된 상업용 위성사진을 토대로 “북쪽과 서쪽, 남쪽 입구의 일부 건물에 대한 철거가 이미 시작되었다는 것을 보여주는 증거가 포착됐다”며 “광산 수레용 궤도가 제거됐고, 수레들도 해체된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핵실험장의 통제센터와 행정지원구역 등 아직 남아 있는 주요 건물은 23∼25일 북한이 초청한 기자들이 참관하는 가운데 폭파될 것으로 보인다.
이와 관련해 백악관 관계자는 동아일보에 보낸 e메일 논평에서 “북한의 핵실험장 폐기 계획을 환영하지만 국제적 전문가들이 사찰하고 완전한 확인 절차를 거친 폐쇄는 북한 비핵화의 주요 절차다”라고 강조했다. ○ 北 “미국의 승전국 같은 태도 수용 어려워”
미국이 북한에 핵실험장 폐기 검증 요구를 꺼내든 것은 최근 미 워싱턴 조야에서도 트럼프식 ‘완전한 비핵화’의 실현 가능성에 대한 의구심이 확산되고 있는 것과 무관치 않다. 미 의회에서 대북제재 해제의 키를 쥐고 있는 인물 중 한 명인 밥 코커 미 상원 외교위원장은 이날 “북한이 비핵화에 전념하지 않는다면 어떤 제재 완화도 받을 수 없다”고 밝혔다. 상원 외교위원회 코리 가드너 동아시아태평양소위원장도 “북핵 위협의 수준이 높은 만큼 제재 완화 조건도 엄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에 따라 핵 폐기에 대한 구체적인 검증 조치를 놓고 북-미가 협상력을 높이기 위해 다음 달 12일 정상회담 직전까지 다시 한번 긴장 국면으로 진입하는 ‘북핵 롤러코스터 정세’가 펼쳐질 가능성이 나온다.
실제로 김정은은 7, 8일 중국 다롄(大連)에서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을 만나 미국이 ‘영구적 핵폐기(PVID)’를 요구하고 있는 것과 관련해 미국이 승전국과 같은 태도를 보이고 있다고 토로한 것으로 알려졌다. 시 주석도 김정은과 회담 후 트럼프 대통령과의 통화에서 “미국이 북한의 합리적인 안보 우려를 고려하길 바란다”고 말했다.
북한 노동신문은 이날 미국에서 나오는 북한인권 문제 제기에 대해 “대화를 앞두고 상호 존중과 신뢰의 분위기를 조성하는 데 힘쓰는 대신 주먹을 휘두르고 있다. 미국이란 나라는 분명 꼬물만 한 도덕성도 없는 깡패 국가”라고 비난했다. 며칠 전 김정은이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을 만난 뒤 노동신문이 “만족할 만한 합의를 했다”고 보도한 것과는 온도 차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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