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은 IMF 회원국이 될 수 있을까?[신석호 기자의 우아한]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5월 20일 16시 2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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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6월 처음 미국 뉴욕을 방문했을 때 새벽마다 수십 명씩 무리지어 맨해튼 센트럴파크를 자전거로 누비는 젊은이들이 특히 좋은 볼거리였다. 세계 금융의 본산지인 뉴욕의 위상을 감안할 때 저들 중 상당수는 월가에서 일하는 야심만만한 젊은이, 즉 뉴욕타임스(NYT) 칼럼니스트 토머스 프리드먼이 명명한 ‘전자 투자가’들일 가능성이 컸다. ‘아! 북한이 문을 열면 저들이 각종 금융회사와 펀드들의 대북 투자를 결정하겠구나’ 생각하니 존재감이 달라보였다.

북한 경제 공부를 좀 더 하고 나서 국제금융업계의 대북 투자를 결정하는 주체는 뉴욕의 민간 투자자가 아니라 세계 정치의 중심 워싱턴 DC에 본부를 둔 국제통화기금(IMF), 국제부흥개발은행(IBRD)을 필두로 하는 세계은행(WB) 그룹 임을 알게 됐다. 이 국제금융기구들이 글로벌 공적자금을 조성하는 등 초기 투자 여건을 마련하고, 그 결과 투자에 따르는 위험이 헤지(분산)된 후에야 민간 자금이 들어오는 구조였다.

이 국제금융기구의 일반 금융지원은 회원국에게만 적용된다. 회원국이 될 자격은 대주주인 미국이 사실상 결정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결국 북한이 국제금융기구의 금융 지원을 받으려면 백악관과 재무부의 최종 허가를 얻어야 한다는 뜻이다.

1944년 브레튼우즈 협정을 통해 IMF와 IBRD 등을 만든 미국은 IMF를 사실상 ‘지배’한다. 미국은 IMF 지분 17.46%를 보유한 최대주주이며 189개 회원국 중 유일하게 거부권도 행사한다. IBRD 역시 미국이 최대주주(지분율 16.88%)다.

<그래프> 주요 7개국 IMF 및 IBRD 지분율


자료출처 IMF 및 IBRD 홈페이지. 인포그래픽=이한울 인턴
자료출처 IMF 및 IBRD 홈페이지. 인포그래픽=이한울 인턴


IMF는 국제 금융체계의 안정을 위해 설립된 정치적 성격의 기구다. 하지만 북한과 같은 저개발국 원조 및 장기 저리 자금 대출은 세계은행이 좌지우지한다.

북한이 세계은행 회원국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우선 IMF에 가입해야 한다. IMF 가입은 ‘총 투표권 수의 3분의 2 이상을 가진 과반수 이상 위원의 참석과 찬성’이 필요하다. 그러나 사실상 총재 선임 권한을 가진 미국이 승낙하면 나머지 주요 국가들이 추인하면서 가입이 이뤄진다.

최근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비핵화 행보에 따라 북한의 IMF 가입설이 심심찮게 등장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비핵화에 대한 대가로 IMF 가입 길을 터줄 수 있다는 이야기다.

북한의 IMF와 세계은행 가입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주요 포스트에 한국계가 포진하고 있다는 점도 눈길을 끈다. 1997년 한국의 IMF 구제금융 협상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아시아태평양 담당국장은 이창용 전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아시아개발은행(ADB) 수석 이코노미스트다. 한국계인 김용 전 다트머스대 총장 역시 6년째 세계은행 총재로 재직 중이다. 김 총재는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이 임명했음에도 트럼프 정권 출범 후 자리를 굳건히 지키고 있다. 워싱턴 국제금융계에서 “이창용과 김용이 있을 때 북한이 IMF와 IBRD 식구가 되는 것이 낫다”는 평가가 심심찮게 나오는 이유다.

김용 총재는 2013년 11월 22일 당시 워싱턴 특파원으로 근무하던 기자를 포함한 일부 특파원단과 만난 자리에서 “북한 문제에 ‘정치적 돌파구’가 생길 때 세계은행은 언제든 (북한 사업을 시작할) 준비가 되어 있다”고 밝혔다.

이어 “우리(세계은행)는 북한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에 대해 찾을 수 있는 많은 자료들을 추적하고 있다. 돌파구만 생기면 우리가 매우 빨리 움직일 준비가 되어 있다”며 “이를 더 확실하게 하기 위해 한국개발연구원(KDI) 및 한국의 다른 전문가들과 가깝게 일할 것”이라고 다짐했다.

당시 북한은 3차 핵 실험(2013년 2월)을 한 뒤 국제 사회와 대화 국면을 조성하는 제스처를 취하고 있었다. 김 총재가 강조한 북한 문제의 ‘정치적 돌파구’란 북한이 핵·미사일 프로그램 개발을 포기하고 개혁과 개방을 통해 국제 사회의 건전한 일원이 되는 정치적 변화였다.

김 총재는 이 때 세계은행이 IMF, ADB 등과 함께 북한 재건을 위한 장기 저리 자금을 지원하는 ‘큰 손’ 역할을 하겠다는 뜻을 천명한 셈이다. 세계은행은 당시 개설한 한국 사무소와 중국 베이징 사무소를 통해 북한 가입에 대비한 사전 준비 작업을 벌여온 것으로 알려졌다.

김용 세계은행 총재(2013년 11월 22일). 워싱턴=신석호 기자
김용 세계은행 총재(2013년 11월 22일). 워싱턴=신석호 기자

이창용 IMF 아태국장(2014년 2월 11일). 워싱턴=신석호 기자
이창용 IMF 아태국장(2014년 2월 11일). 워싱턴=신석호 기자


일각에서는 북한이 핵을 포기하더라도 IMF, IBRD, ADB 등에 가입해 장기 저리의 현금 지원을 받으려면 상당기간 과감한 내부 경제 개혁부터 단행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임을출 연구교수는 2007년 12월 통일연구원을 통해 발행한 ‘국제금융기구의 북한 개입’ 보고서에서 “북한은 먼저 제도나 정책 개선과 관련된 국제사회의 규범과 원칙을 이해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특히 주요 전제 조건인 ‘공공 거버넌스(governance)’의 개선과 관련해서는 “(지원 자금에 대한) 투명하고 책임성 있는 공적 관리 능력이 필수”라고 덧붙였다.

하지만 IMF 한국 대리이사를 지낸 최광해 우리금융경영연구소 대표대행은 “오랜 내전을 겪어 사실상 무정부 상태인 소말리아도 IMF 회원국인 것을 보면 북한의 가입이 어려운 것만은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그는 “결국 미국이 허락하느냐가 중요하다”며 “북한이 완전한 비핵화를 하겠다는 진심을 보이는 것이 관건”이라고 했다.


국제금융계에서는 북한이 확실한 비핵화 의지를 보이고 미국이 이를 허용하더라도 IMF 회원국이 되는데 필요한 통계 작업, 심사 등을 감안하면 최소 2, 3년이 걸릴 것으로 보고 있다. 이 때문에 미국은 신속한 민간 투자를 이끌어내기 위해 북한의 IMF 가입 전이라도 한국, 일본, 유럽연합(EU) 등과 함께 북한개발신탁기금(트러스트 펀드)을 우선 조성할 가능성이 크다.

세계은행이 이 기금을 대신 운영하면서 북한 개발의 초기 자금을 제공하고 각국 민간 금융회사와 펀드 등이 뒤따라오는 동안 북한의 IMF와 세계은행 가입이 마무리되면 본격적인 국제 공적자금이 투입된다. 이는 북한경제 재건 비용 및 한반도 통일비용에 대한 한국 정부와 민간의 장기 부담을 줄이는 데 큰 도움을 줄 것으로 보인다.

김정은 위원장이 확실한 비핵화 의지를 가졌다면 미국과의 물 밑 협상에서 IMF 가입을 추진할 가능성이 크다. 미국도 이를 협상 카드로 활용할 것이다. 결국 열쇠는 김 위원장이 쥐고 있다. 과연 그의 진심은 어디에 있을까.

신석호 디지털뉴스팀장(북한학 박사) kyl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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