伊 다시 혼란… 총리 지명자, 정부 구성권 포기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5월 29일 03시 00분


대통령, 反EU 경제장관 거부하자 콘테 지명자 나흘만에 전격 사퇴
오성운동-동맹당 연정 출범 삐걱
“탄핵” 반발… 총선 재실시 가능성

새 정부 출범을 눈앞에 두고 있던 이탈리아가 총리 지명자의 정부 구성 권한 포기로 다시 혼돈 속으로 빠져들고 있다. 3월 총선에서 승리한 뒤 연정 구성을 성사시킨 반유럽연합(EU) 성향의 이탈리아 오성운동과 동맹당이 친EU 성향의 민주당 지지를 받는 세르조 마타렐라 대통령과 정면충돌하는 모양새다.

주세페 콘테 총리 지명자는 27일 로마 대통령궁에서 “‘변화의 정부’를 구성하기 위해 부여받은 권한을 포기한다”며 “(다음 총리 지명자가 될) 누구든 행운을 빈다”고 밝혔다. 콘테 총리 지명자가 정권 출범을 눈앞에 두고 정부 구성 포기라는 초강수를 둔 건 마타렐라 대통령이 끝내 파올로 사보나 경제장관 후보의 승인을 거부했기 때문이다. 오성운동과 동맹당은 이날 마타렐라 대통령에게 내각 명단을 제출했다.

마타렐라 대통령은 콘테 총리 지명자와의 면담 후 기자회견에서 “사보나 후보를 제외한 모든 내각 명단을 승인했다”며 “유로 탈퇴를 지지하는 이를 승인할 수는 없었다. 유로화에 대한 불확실한 입장은 국민, 그리고 외국인 투자자들을 불안하게 할 수 있다”고 지명 거부 이유를 설명했다.

1993∼1994년 산업장관을 지낸 사보나는 이탈리아 내 대표적인 EU와 유로존 회의론자다. 그는 “이탈리아가 유로존에 가입한 건 역사적인 실수”라며 “유로존을 떠날 계획을 세워야 한다”고 주장해 왔다.

차기 정부 구성을 눈앞에 두고 있던 포퓰리즘 정당 오성운동과 동맹당은 격노했다. 루이지 디마이오 오성운동 대표는 언론 인터뷰에서 “헌법을 위배한 대통령은 의회가 탄핵할 수 있다는 헌법 90조에 따라 마타렐라 대통령을 탄핵하고 새로 총선을 진행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디마이오 대표는 “우리나라는 범죄자, 세금 탈루자, 부패 의심자들은 장관이 될 수 있지만 유럽을 비판하면 경제장관이 될 수 없는 나라”라고 비판했다. 마테오 살비니 동맹당 대표도 “우리는 독일의 식민지가 아니다. 국민들이 하고 싶은 대로 할 수 있어야 하며 선거에서 이긴 팀이 내각을 구성할 권리를 갖고 있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탈리아는 내각제이지만 대통령이 총리 및 각료 임명권, 조약 비준권, 국군통수권 등을 갖고 있어 일반 내각제보다 권한이 많다. 마타렐라 대통령은 28일 국제통화기금(IMF) 재정국장 출신의 카를로 코타렐리를 대통령궁으로 불러 당분간 경제업무를 맡기는 방안을 논의했다. 코타렐리는 ‘미스터 가위’라는 별명이 붙을 정도로 긴축 예산을 지향한다. 이는 세금을 줄이고 기본소득을 제공하겠다는 포퓰리즘 정당 오성운동과 동맹당의 정책과 정반대 방향이다.

그러나 이미 두 정당이 의회 다수를 차지하고 있고, 다른 정당도 선출되지 않은 관료 총리를 선호하지 않아 결국은 가을경 조기 총선 수순으로 돌입할 가능성이 크다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파리=동정민 특파원 ditto@donga.com
#이탈리아#총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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