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웅을 만드는 나라… 마크롱, 무기력한 佛 확 뒤엎으려 ‘프로젝트’ 가동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5월 30일 03시 00분


난간 매달린 아이 구조한 불법 체류자… 가사마
女인질 대신 죽음을 택한 숭고한 군인… 벨트람

“에너지 넘치는 이 남성은 용기 있는 우리의 영웅입니다.”

28일 오후 프랑스 파리 18구, 아들과 함께 아파트 현관 철문으로 들어서던 다비 씨는 걸음을 멈추고 다시 한번 5층 발코니를 올려다보았다. 이틀 전 4세 아이가 이 발코니 손잡이에 대롱대롱 매달려 지켜보던 이들이 마음을 졸이고 있을 때 갑자기 나타난 22세 청년이 맨손으로 발코니 난간을 붙잡고 5층까지 빠르게 기어올라 아이를 낚아챘다. 구조까지 걸린 시간은 불과 30초. 같은 나이의 아들을 키우고 있는 다비 씨는 “내 아들이라 생각하면 너무 아찔하다. 대단한 청년”이라고 엄지손가락을 세워 보였다.

이민자가 많은 파리 18구는 파리에서 가장 가난한 지역으로 꼽힌다. 구출 영상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공개되면서 전 세계적으로 유명해진 이 아파트에선 많은 이들이 현관 앞에 삼삼오오 모여 무용담을 나누고 있었다. 무용담의 주인공인 아프리카 말리 출신 마무두 가사마가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으로부터 감사장을 받고 시민권까지 얻은 것도 화제였다. 불법체류 신분이라 신원을 밝히기 꺼린 한 흑인 남성은 “당시 현장에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밑에서 아기가 떨어질 것에 대비해 옷을 깔아야 하나 이런 얘기를 하고 있었을 때 가사마가 순식간에 올라갔다. 정말 대단했다. 그가 내려왔을 때 모두가 그의 전화번호를 달라고 했다”고 말했다.

‘스파이더맨 영웅’으로 불리는 가사마는 살기 위해 지난해 9월 형과 함께 무작정 프랑스 땅을 밟은 불법체류자였다. 그런 불법체류자를 영웅으로 만든 건 마크롱 대통령이었다. 일요일이던 27일 밤 처음 가사마의 선행 소식을 접한 마크롱 대통령은 다음 날 날이 밝자마자 엘리제궁으로 그를 불렀다. 그는 가사마에게 “당신은 영웅처럼 한 생명을 구했다.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기에 나도 당신에게 누구에게나 줄 수 없는 걸 주고 싶다”며 시민권 부여와 파리 소방관 채용을 결정했다. 소방관 특채 소식에 파리소방본부도 “그의 이타심은 파리 소방관이 될 자격이 충분하다”며 반겼다. 가사마는 29일 오전 체류증을 손에 쥐었다.

일간 르피가로는 “마크롱 대통령의 ‘영웅 프로젝트’가 가동됐다”며 “마크롱 대통령은 젊은 사람들에게 공화국의 모범을 알려주고 싶어 한다. 아르노 벨트람(인질을 자처했다 숨진 군인)에 이어 가사마 영웅 만들기에 나선 이유”라고 보도했다. 벨트람 중령은 3월 남부 소도시 트레베에서 이슬람 극단주의자의 인질극이 벌어졌을 때 스스로 인질을 자처해 인질로 잡혀 있던 여성을 구하고 목숨을 잃은 군인이다. 당시 마크롱 대통령은 수차례 그를 “프랑스의 영웅”이라고 칭송한 뒤 앵발리드에서 국가장으로 장례식을 치르고 그 자리에서 직접 최고 훈장을 추서했다.

프랑스의 과거 영광을 되찾기 위해 활력을 불어넣는 개혁을 진행 중인 마크롱 대통령은 수차례 영웅의 필요성을 강조해 왔다. 대통령의 한 측근은 “대통령은 프랑스인들의 무기력해진 성향을 확 뒤엎고 싶어 한다. 그래서 영웅적인 행동을 알리고 그들도 따라하기를 원하는 것”이라고 전했다.

파리=동정민 특파원 ditto@donga.com
#영웅을 만드는 나라#마크롱#프로젝트#가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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