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르게이 라브노프 외무장관은 31일 러시아 외무장관으로는 2009년 이후 처음으로 평양을 방문해 리용호 외무상과 회담을 가졌다. 한 외교 관계자는 “5월 3일 평양을 방문한 왕이 중국 외교부장처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라브노프를 접견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라브노프 외무장관은 리 외무상과 회담한 뒤 “대북 제재가 풀리기 전까지 한반도 핵문제가 완전히 해결될 수 없다”며 “(북한) 비핵화를 한 번에 보장하는 건 불가능하다. 몇 번의 단계를 거쳐야 하고, 각각의 단계에 따른 거래가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는 미국의 일괄 타결에 맞선 북한의 단계적 비핵화에 힘을 실어주는 발언이다.
러시아는 6자회담 재개를 통해 한반도 상황에 관여하고 싶어 한다. 그러나 그보다 더 관심이 큰 건 북한과 국경을 맞대고 있는 극동지역 개발이다. 방북 전 라브노프 외무장관은 “한반도 정세 외에 러시아와 북한 양국 간 협력사업도 논의할 것”이라고 말했다. 남북러 삼각 협력이라 불리는 극동개발이 이번 방북의 주요 논의사항이라는 게 외교계 관측이다. 한국과 북한, 러시아는 2002년부터 가스, 철도, 전력망 등 유라시아 네트워크 연결과 부산에서 나진을 거쳐 유럽까지 이어지는 대륙 횡단 철도까지 다양한 경제 협력을 논의해 왔다. 그러나 북한의 핵개발과 맞물리며 논의는 중단됐고 2016년 남북러 물류 수송 시간을 단축시키는 나진 하산 프로젝트마저 중단됐다.
극동 개발에 많은 관심을 쏟고 있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4월 문재인 대통령과의 통화에서도 남북러 삼각 협력 사업에 대해 논의했다. 이 사업은 문 대통령의 공약이기도 하다. 이는 경제 우선 노선을 내세운 김 위원장과도 이해관계가 맞아 떨어지는 대목이어서 향후 논의가 급진전 될 수 있다.
다만 러시아는 평화협정에는 관여하지 않겠다는 뜻을 분명히 하고 있다. 이고리 모르굴로프 러시아 외무차관은 지난달 29일 “판문점 선언에서 다룬 정전협정의 평화협정으로의 이행 문제에 러시아는 참여하지 않을 것”이라고 선을 그었다. 여기에는 구소련이 6·25전쟁에 참전하지 않았다고 주장하는 역사적 배경도 담겨 있다. 당분간 러시아는 대북 문제에 있어 중국과 공조할 가능성이 높다. 한반도 전쟁 반대, 동북아에서의 미국 영향력 확대 견제, 한반도 비핵화라는 3대 목표가 중국과 같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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