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라질은 지난달 악몽 같은 물류대란을 겪었다. 트럭 운전사들이 기름값 인상에 항의해 2주간 파업을 벌였기 때문이다. 수천 개 학교들이 휴교에 들어갔고, 물류대란으로 슈퍼마켓 진열대는 텅텅 비었다. 식품과 전력 요금도 껑충 뛰었다. 브라질에선 지난 1년간 휘발유값은 28%, 경유값은 27% 급등했다.
파업과 물류대란에 화들짝 놀란 미셰우 테메르 브라질 대통령은 지난달 28일 유가보조금 지급을 약속하며 트럭 운전사 달래기에 나섰다. 올해 초 도입한 기름값 현실화 방안(전임 좌파 정부의 가격 규제를 없애고 기름값을 국제유가와 달러화에 연동)도 15일 백지화했다.
태평양 건너 중국에서도 트럭 운전사들이 기름값 인상에 항의하며 물품 운송을 거부하는 일이 벌어졌다. 영국에서는 5월 한 달간 휘발유값이 월별 기준으로 사상 최고로 뛰었다. 영국 운전자 로비단체인 RAC 대변인은 17일 월스트리트저널(WSJ)에 “파운드 가치 하락과 유가 급등의 ‘독성 조합(toxic combination)’으로 끔찍한 한 달을 보냈다”고 밝혔다.
○ ‘고유가-강달러’의 ‘독성 칵테일’에 휘청
유가 상승이 미국 금리 인상과 달러화 강세 추세와 맞물리면서 통화가치가 불안한 신흥국들은 더 큰 충격을 받고 있다. 브라질 헤알화 기준 브렌트유 배럴당 가격은 15일 현재 연초 대비 23.7% 올랐다. 달러화 기준으로는 같은 기간 9.8% 상승했다. 헤알화 가치가 하락하면서 브라질의 유가 상승 부담이 상대적으로 더 커진 것이다. 브라질 정부는 트럭 운전사 파업으로 5조 원 규모의 피해를 본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올해 경제성장률도 1%포인트 떨어져 2%에 그칠 것이라는 암울한 전망이 나온다.
루피아 가치가 최근 2년간 최저치로 떨어진 인도네시아에서는 기름값이 선거 쟁점으로 떠올랐다. 재선을 노리는 조코 위도도 대통령은 연료보조비를 주고 전력요금을 내년까지 올리지 않겠다는 공약을 내걸었다. 태국과 말레이시아도 유가보조금을 늘리고 있다. 수단은 기름값이 몇 달 새 5배 올라 운송비용이 증가하면서 빵값이 급등해 시위가 벌어지기도 했다.
○ 유럽도 물가 불안과 소비 위축 걱정
유럽도 유로화 약세 속에서 국제유가 상승의 직격탄을 맞았다. 스위스계 글로벌 은행 UBS는 국제유가가 지난해 배럴당 50달러에서 최근처럼 배럴당 75달러(브렌트유 기준)로 오르면 세계 물가가 0.5%포인트 이상 오를 것으로 예상됐다.
유가 상승세가 당장 유럽 경제에 치명적인 피해를 주진 않겠지만 물가 상승과 소비 심리 위축으로 이어져 금리 인상 압력을 키우고 성장률을 떨어뜨리는 충격을 줄 수 있다. 미국 캐나다와 같은 산유국은 유가 상승으로 경제가 0.3%포인트 상승하는 효과가 있지만, 수입 의존도가 높은 중국과 유로존은 성장률이 0.1%포인트 하락할 가능성이 있다고 UBS는 분석했다.
국제유가의 향방은 산유국의 증산 여부에 달려 있다. 15일 뉴욕상업거래소에서 7월 인도분 서부텍사스산원유(WTI) 가격은 배럴당 65.06달러로 전날(66.89달러)에 비해 2.74% 하락했다. 미중 무역전쟁에 대한 불안감과 사우디아라비아와 러시아의 증산 가능성이 제기되면서 떨어졌다. 석유수출국기구(OPEC) 회원국과 러시아는 22일 오스트리아 빈에서 회의를 열고 감산 합의 완화 등을 논의한다.
뉴욕=박용 특파원 park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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