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기대했던 것보다는 나빴지만, 몇 달 전 북-미 양국이 서로 핵공격을 하겠다고 위협하던 상황보다는 훨씬 낫죠.”
지난해 노벨 평화상을 받은 핵무기폐기국제운동(ICAN)의 베아트리스 핀 사무총장(36)은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에서 나온 공동합의문을 이렇게 평가했다. 지난해 출범한 ICAN은 세계 101개국의 468개 비정부기구(NGO)로 구성된 연합체다. 지난해 7월 유엔총회에서 핵무기 개발, 보유, 사용 위협을 전면 금지하는 핵무기금지조약(TPNW)을 통과시키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공로로 노벨 평화상을 수상했다. 핀 총장을 19일 e메일로 인터뷰했다.
핀 총장은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불가역적인 비핵화(CVID)’가 북-미 정상회담 합의문에 언급되지 않은 점을 지적했다. 북-미 정상회담 당시 싱가포르를 찾기도 했던 그는 “회담이 가시적인 성과를 낼 것 같진 않았지만 최소한 인도주의에 입각한 핵무기 사용은 금지했어야 했다”며 “북한 핵능력을 완전히 파괴하기 위한 공격이 발생하면 서울이 방사능 낙진으로 뒤덮이는 비극적인 결과를 가져올 것”이라고 우려했다.
그럼에도 그는 “이번 회담이 (외교적 접근법의) 시작점이라고 믿는다”며 대화로 문제를 풀려는 노력에 큰 의미를 뒀다. 특히 북-미 간 중재자 역할을 한 문재인 대통령을 ‘용감한 리더’로 높이 평가했다. 그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간의 정치적 긴장감과 한국이 마주한 위협에도 불구하고 문 대통령은 북-미 양측에 올리브 가지를 내밀었다”며 “평창 겨울올림픽에 북한을 초청하는 등 그의 노력으로 북-미 정상회담도 가능했다”고 말했다.
핀 총장은 북-미 정상회담의 합의는 트럼프 대통령과 김 위원장 두 사람의 범위를 넘어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유엔뿐 아니라 (북한의) 핵폐기를 검증할 수 있는 국제원자력기구(IAEA), 포괄적핵실험금지조약기구(CTBTO) 등이 합의에 함께 참여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남북한의 TPNW 가입이 시급하다는 것을 여러 차례 강조했다. 이 조약은 핵무기 개발, 보유뿐만 아니라 핵사용 위협도 금지한다. 핀 총장은 ‘한반도 비핵화를 위해 한국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문 대통령이 자신의 권한을 이용해 TPNW 가입을 선언하는 것”이라며 “조약에 따라 미국이 제공하는 핵억지 전력도 공식적으로 거부해야 할 것”이라고 했다. 남북한과 일본, 미국 등 69개국은 TPNW에 가입하지 않은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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