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지역 예멘 난민 문제가 사회적 이슈로 부상한 가운데 ‘세계 난민의 날’인 20일 유엔난민기구 친선대사인 배우 정우성이 인스타그램에 “난민과 함께해 달라”는 글을 올리자 누리꾼들 사이에선 갑론을박이 벌어졌다. 일부 누리꾼은 “난민 받고 이제 북한까지 떠안아야 하는데 그 돈 다 어디서 나오느냐” “네가 데리고 살아라”라고 공격했다. 약 1000명의 무슬림 난민에 의한 ‘2016년 독일 쾰른 집단 성폭력·강도 사건’ 관련 글을 퍼 나르기도 했다. 이에 “우리도 6·25전쟁 겪고 엄청 지원받았다. 올챙이 시절을 모르느냐”는 반박이 나오는 등 논란이 이어졌다.
법무부 제주출입국·외국인청에 따르면 올 들어 제주 지역에 무사증(무비자)으로 입국한 예멘인은 모두 561명. 이 가운데 549명이 난민 신청을 했다. 이 중 일부는 귀국하거나 다른 지역으로 나갔으며 현재 486명이 제주에 체류하고 있다.
한국과는 별 연결고리가 없는 중동의 먼 나라가 어쩌다 난민 문제로 우리와 얽히게 됐을까?
○ 생지옥으로 변한 ‘예멘의 비극’
예멘 내전은 2010년 12월 튀니지에서 시작된 ‘아랍의 봄’(아랍국가 국민들의 독재 반대 움직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33년간 예멘을 이끌던 알리 압둘라 살레 전 대통령(물러난 뒤 후티 반군과 손을 잡았다 내부 분열로 지난해 12월 살해됨)이 2012년 2월 권좌에서 내려온 뒤 국가 전체가 혼란에 빠졌다.
이 과정에서 예멘 국토는 △이슬람교 수니파인 압드라보 만수르 하디 대통령이 이끄는 정부 △자이드파(시아파의 분파)인 후티 반군 △수니파 급진주의 무장단체인 알카에다 추종 세력이 각각 장악한 지역으로 국토가 ‘3등분’됐다.
특히 예멘 내전은 2014년 8월 후티 반군이 수니파인 정부군과 대대적으로 충돌하고, 이듬해 1월 반군이 수도 사나의 대통령궁을 점령하면서 걷잡을 수 없이 확대됐다. 또 본격적인 ‘국제전’ 내지 ‘대리전’ 양상도 띠기 시작했다. 표면적으로는 예멘 정부군과 후티 반군 간 충돌이 내전의 중요 축이지만, 중동의 패권 경쟁국인 사우디아라비아(정부군 지원)와 이란(반군 지원)의 개입이 조직적으로 이뤄지고 있기 때문이다.
사우디는 2015년 3월부터 공군력을 대거 동원해 반군 점령 지역에 대한 대규모 폭격에 나서고 있다. 또 아랍에미리트(UAE), 이집트, 수단 같은 수니파 동맹국들과 함께 ‘아랍연합군’을 구성해 이들 나라의 지상군 투입도 독려하고 있다. 반면 이란은 무기와 자금을 대규모로 반군에 지원하는 형태로 맞서고 있다.
내전의 골이 깊어지며 원시림, 오아시스, 사막, 바다 등을 모두 갖추고 있어 아라비아반도에서 가장 아름다운 풍광을 자랑하는 나라로 꼽혔던 예멘은 생지옥으로 변했다. 유엔 등은 2015년 3월부터 지난해 말까지 예멘 내전으로 최대 1만3600여 명이 사망했고, 약 19만 명이 예멘을 떠난 것으로 보고 있다.
지난해에는 콜레라 창궐로 약 90만 명이 감염됐고, 2800만여 명의 인구 중 약 70%인 2000만 명에게 긴급 식량 지원이 필요하다는 분석도 나왔다. 최근에는 아랍연합군이 국제 구호물자와 수입품의 70∼80%가 들어오는 호데이다항을 탈환하고, 이 지역에 대한 통제와 공습을 강화하고 있다. 이로 인해 후티 반군은 물론이고 일반 예멘인들에 대한 식량과 의약품 공급이 더욱 어려워질 것이라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실제 참상에 비해 예멘의 비극은 국제사회에 덜 알려진 편이다. 정부군, 반군, 이슬람 극단주의 무장세력인 이슬람국가(IS) 등 ‘3개 정파’로 나뉘어 전 국토가 역시 전쟁터로 변했던 시리아의 경우 국민들이 터키, 그리스, 이탈리아 같은 유럽 지역으로 이동하는 게 용이해 참상이 쉽게 알려질 수 있었다.
그러나 예멘은 사우디와 오만의 사막 지역과 바다(아덴만과 홍해)로 둘러싸여 있어 ‘탈출’ 자체가 어렵다. 예멘과 인접한 중동과 아프리카 국가들과 예멘인들이 배를 타고 이동한 말레이시아 등 동남아 국가들의 난민 보호 의지도 유럽에 비해 약하다. 서울에 주재하는 한 중동 외교관은 “제주에 온 예멘 난민들은 유럽, 중동, 동남아 어디에도 머무를 수 없어 온 이들로 봐야 한다”고 말했다.
○ 사우디와 이란 모두 포기하기 힘든 예멘
“현재로선 사태 해결 방법이 딱히 안 보인다.”
중동 전문가들과 외교가 관계자들은 예멘의 ‘지정학적 가치’ 때문에 사우디와 이란 모두 예멘 내전 개입을 포기하기 힘들다고 입을 모은다. 수니파의 맹주이며 동시에 아랍권 대표주자 격인 사우디와 페르시아의 후예로 시아파의 대표국인 이란은 오랜 기간 동안 중동 지역의 패권을 놓고 경쟁해 왔다. 두 나라는 주변국에서 각각 자신의 종파를 믿는 정치 혹은 무장 세력을 직간접적으로 지원하는 방식으로 영향력을 키워 왔다.
특히 최근에는 이란의 적극적인 영향력 확대 움직임이 눈에 띈다. 이란은 중동에 대한 과감한 개입을 지양했던 미국 ‘버락 오바마 행정부’ 시절 시리아, 이라크, 레바논같이 시아파 인구가 다수거나 무시할 수 없는 비중인 지역에 적극적으로 진출했다. 경제적으로 어렵고, 정세가 불안한 이 나라들의 정권 혹은 시아파나 친이란계 무장단체와 정치단체에 자금, 자원, 무기 등을 공급했다.
시리아와 이라크에선 2014년부터 지난해까지 IS를 퇴치하기 위해 자금과 무기 공급은 물론이고 직접 군대를 보내고 현지 민병대 등을 지원해 대규모 군사 작전까지 벌였다. 레바논에선 남부 지역을 거점으로 대(對)이스라엘 무장 투쟁을 펼치는 시아파계 무장정파 헤즈볼라를 지원하고 있다. 그 결과 중동 외교가에선 ‘이란이 시아파 초승달 벨트(이란-이라크-시리아-레바논으로 이어지는 이란 중심의 동맹 체제)를 상당히 진전시켰다’는 평가도 나온다.
사우디 입장에서는 북동쪽으로 직접 국경이 맞닿아 있는 이라크와 소국(小國) 요르단을 넘어 북쪽에 위치해 있는 시리아와 레바논에서 이란의 입김이 커진 데 이어, 남쪽의 예멘에서도 이란의 영향력이 확대되는 것을 두고 볼 수 없는 것이다. 자국 내 원유와 담수화 관련 시설이 밀집해 있고 이란과도 지리적으로 가까운 동부 지역에 전통적으로 시아파 인구가 많다는 것도 사우디에는 큰 부담이다.
인남식 국립외교원 교수는 “예멘에서도 이란의 영향력이 커지면 사우디는 유사 사태가 발생할 경우 사실상 봉쇄되는 상황을 맞이할 수 있다는 위기감을 느낄 수밖에 없다”며 “사우디로선 예멘은 절대 포기할 수 없는 지역이고, 국제사회의 비난을 감수하면서도 강경한 조치를 취해 자국에 유리한 여건을 조성하려 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지부티, 에티오피아, 소말리아 같은 동아프리카의 관문 격인 국가들과 인접해 있다는 것도 이란과 사우디가 예멘에서의 영향력 확대에 신경을 쓸 수밖에 없는 이유다.
다만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오바마 전 대통령 시절 체결된 이란과의 핵 합의를 깨고, 이란에 대한 제재와 압박을 강화하고 있는 건 변수다. 이런 상황에선 이란이 예멘 내전을 비롯한 지역 영향력 확대 움직임에 공을 들이는 게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 북한 무기 문제도 불거지나
예멘 내전이 지속되는 과정에서 북한의 무기 수출 문제도 부각될 수 있다. 이란과 긴밀한 군사협력 관계를 유지해 온 북한의 무기와 관련 기술이 후티 반군에 흘러들었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올해 2월 미국의소리(VOA)는 후티 반군이 북한의 미사일 기술을 이용해 단거리 탄도미사일 사거리를 늘렸고, 이를 사우디 본토를 공격하는 데 사용했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유엔 안보리 산하 ‘2140 예멘제재위원회 전문가 패널’은 지난해 7월 북한산 미사일과 기관총의 반군 유입도 주장했다. 이 보고서에 따르면 반군들은 북한의 ‘73식 기관총’을 보유하고 있다. 또 ‘화성 5호 미사일’의 복제본인 ‘스커드-B 미사일’도 최소 90기가 공급됐다.
후티 반군은 지난해부터 사우디 수도 리야드의 국제공항 등 주요 시설에 대한 미사일 공격을 늘리고 있다. 향후 UAE 등 사우디의 주요 동맹국의 원전과 원유 생산시설 등을 미사일로 공격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장지향 아산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미국이 북한과 핵, 미사일 개발 문제 해결을 논의하는 과정에서 북한산 무기의 이란 등 중동지역 공급에 대해서도 지적할 수 있다”며 “북한이 핵과 미사일 문제를 원활히 해결하려면 이 부분에 대해서도 분명한 의지를 밝혀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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