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脫석유’ 경제-산업구조 다각화 위해 실업률 35% 여성을 신성장동력으로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7월 3일 03시 00분


사우디 女운전 허용한 진짜 이유는…
여성의 사회참여 기회 늘려 개혁-개방의 기폭제 노려


사우디아라비아가 ‘여성 인권 후진국’이라는 꼬리표를 뗄 수 있을까. 최근 중동지역 여성들의 눈과 귀는 온통 사우디에 쏠려 있다. 운전과 스포츠 관람 허용, 남성보호자 제도 완화 등 여성의 사회활동 범위를 넓히는 파격적 정책이 잇따라 시행되고 있기 때문이다.

세계에서 유일하게 여성 운전을 금지했던 사우디가 지난달 24일 이를 허용한 뒤 수도 리야드에서는 여느 국가들처럼 운전석에 앉은 여성 운전자를 심심찮게 찾아볼 수 있다. 현지 언론에 ‘사우디 최초로 ∼을 한 여성 등장’이라는 보도가 나올 때마다 ‘사우디가 진정한 평등으로 가는 걸음을 내딛고 있다’는 평가도 함께 나오고 있다. 하지만 사우디의 여성 친화적 개혁 정책의 이면에 경제 및 산업구조 다변화라는 국가 과제가 숨어 있다는 분석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석유 중심의 경제구조로 인한 경제성장률 부침, 매년 높아지는 실업률 등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여성 인력 활용이 불가피한 선택이란 뜻이다. 2016년 사우디 전체 실업률은 12.3%이지만 여성 실업률은 3배 수준인 34.5%에 이른다.

2014년 하반기 국제유가가 급락한 뒤 사우디 성장률 그래프는 가파르게 하락세를 그렸다. 2015년 4.1%였던 성장률은 2016년 1.7%로 떨어진 뒤 지난해엔 ―0.7%까지 추락했다. 이는 사우디뿐 아니라 아랍에미리트(UAE), 카타르 등 중동 산유국에서 “석유산업 의존도를 줄이고 경제 다각화를 적극 추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한층 강화되는 계기가 됐다.

사우디 개혁을 주도하는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33)가 2016년 ‘사우디 비전 2030’ 계획을 발표하며 신성장동력 찾기에 나선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이집트와 사우디에서 활동 중인 한국 중소기업 관계자는 “사우디는 여성의 대학 진학률이 남성보다 높지만 사회 참여 기회는 턱없이 부족하다”며 “실업률을 낮추고, 사회 개혁·개방 분위기를 만들려는 사우디 정부에 ‘여성’이란 키워드는 변화의 기폭제 같은 도구”라고 설명했다.

UAE, 카타르 등도 같은 과제를 안고 있다. 이들 역시 ‘UAE 연방 비전 2021’ ‘카타르 비전 2030’ 등의 산업 다변화 계획을 앞다퉈 발표하며 신성장동력 찾기에 매진하고 있다. 대중교통 시스템을 비롯해 생활 인프라 시설을 구축하는 한편 여성의 노동 참여를 장려하고 외국인 투자 활성화에 힘쓰고 있다. 카타르의 무함마드 살레 알 사다 에너지·산업장관은 “카타르 비전 2030은 천연가스, 대중교통, 교육에 대한 투자 등을 통한 경제의 다양성을 추구하는 것이 목표”라며 “남녀 구분 없는 자유로운 경제 및 사회 활동 참여, 미디어의 자유 보장 등도 이 같은 개혁의 연장선에 있다”고 말했다.

이 같은 중동 산유국의 변화 흐름은 한국 기업들에 새로운 비즈니스 기회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 사우디는 중동 지역 내 한국의 최대 교역국이다. 지난해 한국과 사우디 교역 규모는 247억3700만 달러로 전년(213억8600만 달러) 대비 상승했다. UAE, 카타르 등과의 교역 규모도 증가하고 있다. 주요 수출 품목으로는 승용차, 건설중장비, 타이어 등이 대표적이다.

블룸버그통신은 사우디가 그동안 금지했던 여성 운전 허용의 수혜자로 일본 도요타와 함께 한국의 현대자동차를 꼽았다. 사우디 미혼 직장여성과 여학생 등이 잠재적인 승용차 구매 고객층에 편입되는 것을 계기로 시장 규모 확대를 노려볼 수 있다는 뜻이다. 현대차는 사우디 여성 운전 허용 직후 ‘운전석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라는 문구가 적힌 광고를 시작했다.

카이로=서동일 특파원 dong@donga.com
#사우디아라비아#여성인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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