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핵화 협상 난기류]
폼페이오 방북, 견해차만 확인… 대화 모멘텀 급속 냉각 우려
문재인 대통령 운전석론 다시 주목… 정부 “일단 긴 호흡으로 지켜보자”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의 공동성명을 이행하기 위해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이 평양으로 달려갔지만 기대했던 비핵화 시간표나 검증 대상은 들고 돌아오지 못했다. ‘(협상)판을 깨지 않고 유지한 게 그나마 다행’이라는 안도마저 흘러나오는 가운데 꽉 막힌 비핵화 대화의 출구를 조속히 찾기 위한 ‘플랜 B’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 싱가포르 회담에서부터 예견된 난관
폼페이오 장관은 평양을 떠나며 “진전이 있다”고 평가했지만 워싱턴 조야의 반응은 싸늘하다. 굳이 성과라면 앞서 정상 간 만남에서 ‘완전한 비핵화’라고 포장됐던 비핵화 견해차가 이번에 벗겨지며 첨예한 민낯을 드러낸 것이라는 지적이 나올 지경이다.
문제는 미국이 패를 많이 써버렸다는 것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 행정부는 싱가포르 정상회담 직후 한미 연합 군사훈련 연기를 연이어 결정했지만 북한은 여전히 비핵화에 나서지 않으며 CVID를 ‘강도적 요구’라고 비난했다. 미국의 비핵화 조건부 경제 지원 의사에 북한은 “북한의 미래는 미국이 결코 가져다주지 않는다”며 거절했다. ‘공화국 보검’인 핵을 ‘푼돈’에 넘길 의사가 없음을 다시 한번 분명히 한 것이다.
정상회담 후 약 한 달 만에 열린 북-미 고위급 회담이 성과 없이 마무리되면서 자칫 어렵게 만든 대화 모멘텀이 급속히 냉각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박인휘 이화여대 국제학부 교수는 “가장 핵심적인 북한의 핵 능력 신고 절차와 관련된 합의 시점이 빨리 이뤄져야 접점이 생길 것”이라고 했다. 윤덕민 전 국립외교원장은 “앞서 북-미 정상회담에서 디테일에 대한 지침이 거의 없었기 때문에 지금의 교착 국면은 예고됐던 상황”이라고 평가했다.
○ 다시 주목받는 문 대통령의 운전석론
일단은 서신을 교환한 북-미 정상이 다시 ‘톱다운’ 방식으로 협상 모멘텀을 끌어올려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문재인 대통령이 5월 26일 판문점에서 ‘깜짝 남북 정상회담’을 열어 북-미가 싱가포르로 가는 징검다리를 놓은 것처럼 이번에도 적극적인 중재자 역할을 해야 한다는 말도 있다. 정부는 이전보단 신중한 입장이다. 한 정부 고위 관계자는 “북핵 회담이 단시일 내에 끝나는 쉬운 협상이 아니지 않나. 일단 긴 호흡으로 (북-미 간 협상을) 지켜봐야 한다”고 했다. 북-미가 12일 판문점에서 만나 미군 유해 송환 등을 논의하는 후속 회담을 열기로 한 만큼 일단 움직임을 더 지켜볼 때라는 것이다.
하지만 북-미 간 이견의 골이 깊어지고 자칫 감정이나 자존심 싸움에 들어가기 전에 정부가 다시 분위기를 유연하게 만들어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한 대북 전문가는 “결국 장기전이고 북-미 정상의 인내심 싸움에 들어간 측면도 있다. 다소 다혈질인 양측 정상이 돌이킬 수 없는 결정을 내리기 전에 우리 정부가 상황을 주시하고 적극 개입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어중간한 중재자 역할보다는 한반도의 캐스팅보트를 쥐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최강 아산정책연구원 부원장은 “정부가 북-미 사이에서 중재나 조정자 역할을 버리고 오히려 미국에 힘을 실어줘 비핵화 단계 속도를 앞당겨야 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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