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르셀로나 시내가 내려다보이는 스페인의 유명 관광지 구엘공원 담벼락에 낙서처럼 적혀 있는 글이다. 세계 각지에서 몰려드는 관광객들 때문에 지역 주민들이 겪는 고통을 대변하는 메시지다. 지난 한 해에만 외국 관광에 나선 인구는 13억 명. 관광객들이 도시를 점령하면서 지역 주민의 불만은 쌓여가지만 그렇다고 돈이 되고 일자리를 제공하는 관광산업을 포기하기도 힘들다. ‘황금 알을 낳는 거위’라고도 불리는 관광산업이지만 ‘오버투어리즘’에 따른 세계 관광 도시들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12일 프랑스 파리 루브르박물관 드농관 711번.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걸작 ‘모나리자’가 걸려 있는 이 방은 입구부터 사람들로 꽉 차 들어가기 힘들었다. 그림 양옆으로 2명의 경비원이 앉아 관람객들을 통제했지만 그림을 조금이라도 더 가까이에서 보려는 사람들을 막아내기엔 역부족이었다. 바캉스 기간인 7, 8월이면 반복되는 일이다.
프랑스는 오버투어리즘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파리 루브르박물관(연간 방문객 810만 명)과 에펠탑(650만 명), 파리 근교 베르사유 궁전(700만 명), 북부 노르망디 지역의 수도원 몽생미셸(250만 명), 중부 루아르강 근처의 샹보르성(100만 명) 등이 대표적이다. 프랑스 일간 르피가로는 최근 “프랑스가 ‘황금 알을 낳는 거위’의 딜레마에 빠졌다”고 보도했다. 관광객들이 프랑스에 부를 안겨주는 황금 알이지만 이를 그대로 뒀다가는 정작 거위를 죽게 할 수도 있다는 지적이다. 파리를 찾는 관광객들이 보고 싶어 하는 여행지의 80%가 센강변에 몰려 있어 여름 바캉스 기간 이 지역은 관광버스와 관광객들로 북새통이다. 하루 3만 명씩 몰려드는 노트르담 대성당이 있는 시테섬은 주민들이 거의 다 빠져나가고 음식점과 기념품 가게만 남았다.
오버투어리즘으로 골머리를 앓는 건 프랑스뿐만이 아니다. 세계적인 관광지인 스페인의 바르셀로나와 마요르카, 이탈리아 베네치아, 크로아티아 두브로브니크, 아이슬란드 레이캬비크, 독일 베를린, 체코 프라하 등 유럽과 일본 교토, 인도네시아 발리 등 아시아 지역까지 오버투어리즘이 확산되고 있다. 지난달 공개된 다큐멘터리 영화 ‘크라우디드 아웃(Crowded Out)’이 적지 않은 반향을 일으켰을 만큼 오버투어리즘은 세계적 관광도시에서 사회적 문제가 되고 있다. 영국인 저스틴 프랜시스가 제작한 이 영화는 바르셀로나와 베네치아의 오버투어리즘을 정면으로 다뤘다.
생활 터전으로 관광객이 몰려오면서 주민들의 고통은 이만저만이 아니다. 에어비앤비 같은 단기 렌털형 숙소가 늘어나면서 주민들이 살 주거 공간은 줄어들고 집값은 오르고 있다. 대중교통과 도로는 늘 관광객들로 넘쳐난다. 신선한 식재료를 살 수 있었던 식료품 가게는 여행객들을 위한 포장용 음식점들로 채워지면서 저녁 장을 보기도 힘들어졌다. 관광객들의 일탈 행동과 관광객들을 노린 소매치기까지 늘면서 치안도 나빠졌다. 해럴드 굿윈 맨체스터메트로폴리탄대 교수는 “여행객들에게 여행지의 진짜 모습이 사라지고 있고, 지역 주민들은 분노와 짜증만 커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관광 도시들은 해법 마련에 애쓰고 있다. 프랑스는 두 달 전부터 에펠탑 단체 입장표를 사는 건 프랑스 관세청에 등록한 법인만 가능하도록 했다. 프랑스의 베르사유궁은 시기별, 시간대별로 입장료에 차이를 두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페루의 마추픽추, 인도의 타지마할도 방문객 수를 제한하고 있다.
여행객들이 부담해야 할 비용을 늘린 경우도 있다. 마요르카섬이 있는 스페인 발레아레스주 정부는 올 5∼10월 여행세를 부과한다. 5성급 호텔에 묵으면 하루에 4유로(약 5300원), 4성급은 3유로(약 4000원)를 내야 한다. 네덜란드의 암스테르담은 관광객 유치를 위한 여행지 홍보 자체를 중단했다.
연간 방문 관광객이 3000만 명에 이르는 바르셀로나는 지난해 ‘관광객은 집으로 가라’고 외치는 복면 시위대가 등장할 정도로 오버투어리즘에 따른 주민 반발이 심하다. 이 때문에 아다 콜라우 바르셀로나 시장은 호텔 신축 허가를 내주지 않고 숙박 공유업체가 연간 90일 이상 방을 빌려줄 경우 3만 유로(약 3960만 원)의 벌금을 부과하도록 규제를 강화했다.
하지만 돈이 되고 일자리 창출로도 연결되는 관광산업에 무작정 제한만 둘 수는 없다는 데 각국의 고민이 있다. 관광산업은 프랑스 국내총생산(GDP)의 7.2%를 책임지고 고용의 10%를 해결해 주고 있다.
:: ‘오버투어리즘(overtourism)’ ::
‘오버(over)’와 ‘투어리즘(tourism·관광)’이 결합된 말로 수용 범위를 넘어서는 관광객이 몰려들면서 도시 환경과 문화재 파괴, 주민 불안, 주거난 등의 부작용이 생기는 현상을 뜻한다. 파리, 바르셀로나, 암스테르담, 베네치아 등의 도시들이 오버투어리즘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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