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과 장클로드 융커 유럽연합(EU) 집행위원장은 25일 백악관에서 정상회담 후 가진 공동기자회견에서 “미국과 EU는 철강, 알루미늄 관세와 보복 관세를 해결할 것”이라며 “무역협상을 진행하는 동안에는 추가적인 관세 부과 조치를 하지 않기로 했다”고 말했다. 철강 및 알루미늄 고율 관세에 이어 자동차 관세로까지 확대될 뻔했던 미국과 EU 간의 ‘대서양 무역전쟁’이 일단 ‘휴전’ 상태가 된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과 EU는 새로운 국면을 열었다”며 “비자동차 분야에서 무관세, 무비관세장벽, 제로 보조금을 향해 함께 노력하기로 동의했다”고 말했다. 양측은 서로 다른 규제 기준의 차이를 줄이기 위한 실무 회담에서 화학 분야, 제약, 의료 기구에 대한 무역 기준을 완화하는 데 노력해 나가기로 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자유롭고 공정한 무역을 위한 빅데이(big day)”라며 만족감을 표했다.
전날만 해도 “관세는 최고로 훌륭한 것”이라며 EU를 압박했던 트럼프 대통령의 마음을 바꾼 건 EU의 미국산 수입 확대 제안이었다. 융커 위원장은 이날 EU가 미국산 콩(대두) 수입을 즉시 확대하고 미국산 액화천연가스(LNG) 수입도 늘리겠다고 말했다. EU의 보복관세로 인한 미국 기업과 농가의 내부 반발 때문에 고민해 온 트럼프 대통령에게는 엄청난 희소식이었다. EU 관계자는 영국 파이낸셜타임스에 “트럼프 대통령은 트위터에서 난리법석을 떨던 모습과는 달랐다. 그는 시장을 돕기 위한 방안을 찾으려고 명확하게 애쓰고 있었다”고 전했다.
양측은 ‘관세전쟁’으로 신뢰에 금이 간 대서양 동맹 복원에 애쓰는 분위기였다. 워싱턴포스트에 따르면 융커 위원장은 이날 트럼프에게 고국인 룩셈부르크에 있는 군사 묘지 사진을 건넸다. 그 묘지는 제2차 세계대전 말 프랑스와 독일에서 미국 부대를 이끌었던 조지 패튼 장군이 묻혀 있는 곳이다. 융커 위원장은 그 사진에 “트럼프 대통령님, 우리가 함께한 역사를 기억합시다”라고 썼다. 트럼프 대통령은 정상회담 뒤 트위터에 융커 위원장과 볼키스 하는 사진과 함께 “우리는 서로 사랑한다”는 글을 올리기도 했다.
미국과 EU는 세계무역기구(WTO) 개혁을 위해 공동 협력하기로 했다. 이는 지식재산권 침해와 국영 기업에 대한 산업 보조금 지급 등 국가의 과도한 민간 개입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는 것으로 결국 중국을 염두에 둔 것이라고 파이낸셜타임스(FT)는 전했다.
일단 급한 불은 껐지만 아직 가야 할 길은 멀다. 아직 관세 철폐가 확정된 건 아니기 때문이다. 양측은 6월 1일부터 발효 중인 EU산 철강 및 알루미늄 관세를 언제 종료할지 명확히 하지 않았다. 미 상무부는 이번 합의와 무관하게 어느 나라의 자동차 및 부품 수출이 미국의 국가안보를 해치고 있는지 조사를 계속 진행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그 결과에 따라 트럼프 대통령이 다시 자동차 관세 카드를 꺼낼 가능성도 있다. 독일 상공회의소(DIHK)는 “자동차 관세는 아직 완전히 테이블에서 사라진 게 아니다”라며 경계를 늦추지 않았다.
또한 연간 1520억 달러에 달하는 미국의 대(對)EU 적자를 어떻게 해소해 나갈지도 확실치 않다. EU가 더 많은 미국산 콩과 LNG를 구매하겠다고 했지만 민간 기업에 구매를 강제하기 힘들어 얼마나 실효성이 있을지는 미지수다. 특히 트럼프 대통령은 EU가 미국산 LNG의 ‘거대한 구매자’가 될 거라고 말했지만 대륙 가스관을 통해 손쉽게 옮기는 러시아에 비해 미국산 LNG는 가격이 비싸 구매를 얼마나 늘릴지도 의문이다.
또 유럽 내에서도 자동차 관세 부과를 일단 막은 독일은 만족스럽지만 농산물 수입 확대로 프랑스는 피해를 볼 수 있어 이해관계에 따라 EU 회원국 간 갈등이 발생할 소지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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