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행정부 들어선 뒤 허용… 美단체, 지난 주말부터 파일 배포
소총 사흘간 1000건이상 내려받아… 플라스틱 총, 공항검색대 무사통과
등록번호 없어 추적 사실상 불가능… 美 21개주 “공공안전 위협” 중단촉구
3차원(3D) 프린터를 이용해 플라스틱 총을 만들 수 있는 설계도의 인터넷 공개(1일)를 앞두고 미국에서 찬반 논란이 뜨거워지고 있다.
캘리포니아와 뉴욕 등 21개 미국 주정부는 지난달 30일 “공공안전에 전례 없는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라며 설계도를 공개해선 안 된다고 연방정부를 압박했다. 21개 주정부의 법무장관들은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과 제프 세션스 법무장관에게 보낸 공개서한에서 “(설계도 배포 허용은) 테러리스트의 무장을 도울 뿐 아니라 법적으로 총기 소유가 금지된 사람들도 이를 소유할 수 있도록 길을 열어주는 꼴”이라고 지적했다.
3D 프린터 플라스틱 총이 허용되면 신원 조회를 거치지 않고도 총기를 소유할 수 있게 돼 총기와 관련된 참사 발생을 앞으로도 막기 어렵다는 것이다. 공항의 보안검색대도 무사통과할 가능성이 크고 별도의 등록번호가 없어 추적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그래서 ‘유령 총(ghost gun)’으로도 불린다.
그러는 사이 설계도 공개 찬성 진영은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총기 소유를 지지하는 비영리단체 ‘디펜스 디스트리뷰티드’는 이미 지난 주말부터 권총 ‘리버레이터(liberator)’와 AR-15 반자동 소총 등의 3D 프린터용 설계도를 인터넷으로 배포하기 시작했다. AR-15 소총 설계도의 경우 지난달 27∼29일 사흘간 1000건 이상의 다운로드 횟수를 기록했다. 이 단체는 플라스틱 총의 대중화가 ‘표현의 자유’ 문제라고 주장하고 있지만 정부와 합의한 날짜(1일)보다 일찍 설계도를 공개한 이유에 대해선 설명하지 않았다.
3D 프린터를 이용한 플라스틱 총 제조법은 2013년 당시 텍사스주 오스틴에 거주하던 법대생이자 디펜스 디스트리뷰티드 창립자인 코디 윌슨(30)의 머리에서 나왔다. 완전한 형태로 사용이 가능한 플라스틱 총 개발에 세계 최초로 성공한 것이다. 그는 그해 4월부터 3D 프린터를 이용해 장난감 블록인 ‘레고’의 재질과 동일한 플라스틱으로 만드는 총의 설계도를 인터넷에 올리기 시작했다. 당시 언론 인터뷰에서 자유를 위한 ‘혁명’을 위해 설계도를 공개했다고 밝힌 그는 배포 2주 만에 다운로드 횟수가 10만 건에 도달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당초 미 연방정부는 플라스틱 총에 대해 부정적이었다. 미 국무부는 당시 외국인이 해당 설계도를 통해 총기를 제작하게 된다면 국제무기거래규정(ITAR) 위반이란 논리를 내세워 설계도 게재 및 배포를 금지했다. 윌슨은 이에 연방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며 수년간 법정 공방을 벌여왔다. 하지만 총기 소유에 긍정적인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들어선 뒤인 올해 6월, 연방정부는 윌슨과 합의하기로 전격 결정하고 설계도 배포를 허용했다.
올 2월 플로리다주 마저리스톤먼더글러스 고등학교에서 발생한 총기난사 사건으로 14세 딸을 잃은 프레드 거튼버그 씨는 지난달 27일 워싱턴포스트(WP)에 “어떻게 사안이 이 지경까지 왔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 시민들의 목숨이 위험에 처하게 됐다”고 우려했다. 워싱턴, 매사추세츠, 펜실베이니아 등 8개 주 법무장관들도 지난달 30일 설계도 배포를 전국적으로 막는 ‘임시 금지 명령’을 내려 달라고 연방법원에 요청했다.
하지만 설계도 공개 허가가 떨어진 데다 시행일이 임박해 이를 막기엔 이미 늦었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지난달 27일 텍사스주 연방지방법원은 총기 규제를 지지하는 3개 단체가 정부의 설계도 인터넷 공개 허용 결정에 반발해 낸 소송을 기각한 바 있다. 소송을 제기한 시민단체 ‘총기폭력 예방을 위한 브래디 센터’의 조너선 로이 부회장은 WP에 “지니(‘알라딘과 요술램프’에 등장하는 램프 속 요정)가 한 번 병에서 빠져나오면 돌아가기 어려운 것처럼, 설계도가 인터넷에 공개되는 순간 상황을 되돌리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도 31일 아침에 올린 트윗에서 “3D 플라스틱 총이 일반인들에게 판매되는 문제를 살펴보고 있다. 이미 전미총기협회(NRA)와 얘기해봤는데 적절하지 않은 것 같다”고 적었다.
한기재 record@donga.com·전채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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