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 이 쪽입니다!”
15일 오전 10시 반 일본 도쿄 지요다(千代田)구 야스쿠니(靖國)신사 내 참배 장소 앞. 검은색 승용차들이 잇달아 섰다. ‘다함께 야스쿠니신사를 참배하는 국회의원 모임’ 소속의 의원들이다. 이나다 도모미(稻田朋美) 전 방위상, 하기우다 고이치(萩生田光一) 자민당 간사장 대행 등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의 측근들도 모습을 보였다.
●참배 의원 수 줄자 “전쟁 역사를 모르는 젊은 의원 걱정스러워”
약 1시간 전에는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전 총재의 아들인 고이즈미 신지로(小泉進次郞) 자민당 수석부간사장이 개인적으로 따로 참배를 했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는 시바야마 마사히코(柴山昌彦) 자민당 총재 특보를 대리인으로 보내 공물료를 납부했다. 시바야마 특보는 이날 기자들에게 “총리로부터 ‘참배하지 못해 죄송하다’는 메시지가 있었다”고 말했다. 아베 총리의 공물료 납부는 2012년 총리 취임 후 해마다 계속되고 있다.
이날 참배를 하러 모인 의원은 총 50명. 2명(일본유신의회, 희망의당 소속 각 1명)을 제외한 48명이 모두 자민당 소속 의원이다. 전체 숫자는 지난해(63명)보다 줄었다. 이를 의식한 듯 오쓰지 히데히사(尾¤秀久) ‘다함께 야스쿠니신사를 참배하는 국회의원 모임’ 회장은 참배 후 기자회견에서 “세대가 바뀌어서 전쟁의 역사를 잘 모르는 젊은 의원들 투성이”라며 “이것이 앞으로 일본에 어떤 영향을 끼칠지 걱정스럽다”고 말했다. 참배가 당연한 일이라는 식의 발언에 기자 회견장이 잠시 술렁거리기도 했다.
의원들 뿐 아니라 일반 시민들도 아침부터 야스쿠니신사를 찾았다. 일부 우익 단체 회원들은 제국주의를 상징하는 군복을 입고 나타나 욱일기를 펼치며 ‘만세’를 외치기도 했다. ‘일본은 패전국이 아니다’라는 현수막을 걸고 야스쿠니 입구에서 연설을 하는 우익들도 있었다. 신사 내부에서는 욱일기와 우익 활동 내용이 담긴 책이 판매되고 있었다.
일부 우익 세력은 한국 취재진을 발견하고 “조센징이 여기 왜 왔냐”며 “(위안부 합의금으로) 돈을 모아 부자가 됐으면 된 것 아니냐”는 막말을 퍼붓기도 했다. 군복을 입고 모형 칼을 허리에 차고 나타난 한 중년 남성은 기자에게 “한국은 지금 일본 덕분에 잘 살고 있는 것”이라며 “한국인은 (일본에) 감사할 줄 알아야 한다”며 말하기도 했다.
●“깊은 반성” 일왕 ‘반성’ 뺀 아베 총리
한편 같은 날 낮 12시 도쿄 지요다 구 부도칸(武道館)에서 열린 ‘전국전몰자추도식’에서 아키히토(明仁) 일왕은 지난해에 이어 또 다시 ‘깊은 반성’이라는 표현을 썼다. 아키히토 일왕은 2015년 추도식에서 전쟁을 일으킨 나라로서 ‘깊은 반성’을 한다는 표현을 처음 썼고 이후 매년 추도식에서 이 표현을 빼놓지 않고 있다. 아키히토 일왕은 “전쟁 후 평화의 세월을 생각하면서 깊은 반성과 함께 앞으로 전쟁의 참화가 반복되지 않기를 빈다”라고 밝혔다.
반면 아베 총리는 올해도 전쟁에 대한 반성을 하지 않았다. 아베 총리는 추도문에서 “오늘의 평화와 번영이 전몰 장병 여러분의 값진 희생 위에 세워진 것임을 우리는 잠시도 잊지 않는다. 전쟁의 참화를 다시 반복해서는 안 된다”고만 말했다. 전쟁에 대한 일본의 직접적인 책임을 언급하지 않은 것이다. 아사히신문은 15일 추도식 소식을 전하며 “1993년 호소카와 모리히로(細川護熙) 전 총리 이후 역대 총리들이 추도식에서 가해 책임을 언급하며 애도의 뜻을 밝혔는데 아베 총리는 (올해를 포함해) 6년 연속으로 가해 책임을 언급하지 않았다”며 비판했다.
도쿄=김범석 특파원 bsis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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