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일 오후 미국 뉴욕 34가 AMC로스 극장 입구로 아시아계 관객들이 줄지어 들어섰다. 싱가포르계 미국인 케빈 콴의 동명 베스트셀러 소설을 원작으로 한 할리우드 로맨틱 코미디 ‘크레이지 리치 아시안스(Crazy Rich Asians)’를 관람하기 위해서다. 이 영화는 이날 이 극장을 포함한 미국 주요 도시에서 일제히 개봉했다. ‘크레이지…’는 1993년 ‘조이 럭 클럽’ 이후 25년 만에 아시아계 배우가 주연과 조연으로 등장한 할리우드 영화로 개봉 전부터 미 영화계의 주목을 받았다.
○ ‘아시아계 유리 천장’ 깨고 개봉 첫 주 1위
19일 뉴욕타임스(NYT)에 따르면 ‘크레이지…’는 개봉 첫 주말 2550만 달러(약 286억 원)의 수입을 올려 박스 오피스 1위에 올랐다. 이 영화는 중국계 미국인인 뉴욕대 경제학과 여성 교수(콘스턴스 우)가 싱가포르 재벌 가문 출신 남자 친구(헨리 골드윙)를 따라 싱가포르에 가서 그곳의 상류사회를 경험하며 벌어지는 일을 유쾌하게 그렸다. 아시아계 영화는 흥행에 불리하다는 편견을 깨고 3000만 달러의 투자를 받았다. 워싱턴포스트(WP)는 “무술 고수나 얼뜨기 이민자로 그려지는 아시아계 배우의 고정관념을 깼다”고 평가했다.
할리우드는 뿌리 깊은 아시아계 배우 차별로 악명이 높다. 지난해 대니얼 대 김과 그레이스 박 등 한국계 배우가 출연료 차별을 이유로 TV 드라마 출연을 거부한 적도 있다. 이 영화는 아시아계 배우들이 주요 배역들을 모두 맡아 할리우드의 고질적인 ‘화이트 워싱(아시아인 역할을 백인 배우가 맡는 것)’ 논란도 씻어냈다. 한국계 배우 켄 정과 로라 아콰피나 럼도 조연으로 출연했다.
미국 극장가엔 올여름 아시아계 영화 바람이 불 것으로 보인다. 이달 한국계 배우 존 조가 주연을 맡은 아시아계 주연의 최초 할리우드 스릴러 영화로 평가받는 ‘서칭(Searching)’도 개봉한다.
○ 아시아계, 미국 최대 양극화 집단 그늘도
‘크레이지…’ 주말 관객의 38%가 아시아계로 집계되면서 급성장 중인 아시아계의 ‘티켓 파워’가 입증됐다. 뉴욕포스트는 이 영화 개봉을 계기로 8억 원어치 핸드백과 신발을 가진 인도네시아계 재벌 2세, 한 달 월세 1억 원짜리 집에 사는 말레이시아계 젊은 부자, 호화 럭셔리 아파트 1개 층 11채를 약 220억 원을 주고 ‘싹쓸이’ 구매한 중국인 부부 등 뉴욕의 아시아계 부자들의 소비 행태를 조명했다. 이 신문은 “뉴욕 28가 한국인이 소유한 미션 나이트클럽은 아시아 부자들의 ‘핫 스팟(인기 장소)’”이라며 “아시아 부자들은 알래스카에서 공수한 킹크랩, 보디페인팅을 한 여성 모델 50명이 참석하는 억대 개인 파티를 연다”고 전했다.
하지만 아시아계 부자를 소재로 한 이 영화가 아시아계 이민자들의 어두운 그늘을 가리고 있다는 비판도 나온다. 1970년 미국 인구의 1% 미만이었던 아시아계는 현재는 6%로 늘었지만 소득 불평등은 모든 인종 중 가장 심각하다. 2016년 아시아계 상위 10%의 소득은 하위 10%의 10.7배였다.
중국계 인도계 등 고학력의 부유한 아시아인은 미국 최상위 소득 집단에 속하지만 최근 이민이 증가한 동남아계 등 가난한 아시아인들의 소득은 정체 상태다. NYT는 “관객들은 아시아인들이 매력적인 삶을 살 것이라는 인상을 받을지 모르지만 인구학자들은 할리우드의 밝은 이야기가 아시아계의 어려움을 가려선 안 된다고 말한다”고 전했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