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 한국 앞질러 ‘세개의 눈’ 탑재… 프리미엄 시장까지 ‘야금야금’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8월 2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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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제조업 골든타임을 지켜라]8대 주력산업 점검<4>스마트폰

국내 전자업계 스마트폰 연구원으로 10년 넘게 일해 온 A 씨는 화웨이가 올해 3월 공개한 프리미엄 스마트폰 ‘P20 pro’의 카메라를 써본 뒤 “현존하는 스마트폰 중 최고 수준의 저조도 촬영 기술을 구현했다”고 평가했다. 빛이 부족한 저조도 환경에서는 렌즈가 빛을 많이 받아들이도록 조절해 사진의 밝기를 높이는데 타사 제품은 이 과정에서 피사체의 디테일을 담지 못하는 문제가 발생한다. P20 프로는 밝기와 선명도(Sharpness)를 모두 잡았다는 것이다. P20 프로는 화웨이가 세계 스마트폰 점유율 1, 2위를 다투는 삼성전자와 애플을 제치고 업계 최초로 후면 카메라에 렌즈가 세 개 들어간 ‘트리플 카메라’를 넣어 주목받은 제품이다.

○ ‘세계 최초’ 타이틀 독점하는 중국

스마트폰 전문가도 놀랄 정도의 성능 뒤에는 ‘픽셀 비닝(Binning)’이 숨어 있다. 픽셀 비닝이란 여러 개의 픽셀을 하나로 묶는 기술이다. 픽셀은 빛을 받아들이는 역할을 하는데 여러 개의 픽셀이 합쳐지면 픽셀 크기가 커지기 때문에 밝은 촬영이 가능하다. 화웨이는 ‘메인 RGB(적·녹·청) 렌즈’에서 네 개의 픽셀을 하나로 묶어 기존보다 4배 밝게 사진이 찍힌다. 전체 픽셀 수가 줄면서 화질이 떨어지는 문제는 외곽선의 세밀한 표현을 돕는 ‘모노(흑백) 렌즈’로 해결했다. 스마트폰 후면 카메라에 모노렌즈를 별도로 넣은 업체는 화웨이가 유일하다.

A 씨는 “픽셀 비닝 자체는 LG전자, 소니 등도 제품에 적용한 적이 있는 기술이지만 픽셀 비닝으로 발생하는 선명도 저하의 문제를 모노렌즈로 해결한 점이 업계가 놀라는 대목”이라며 “두 렌즈가 상호보완을 통해 최적의 화질을 구현하도록 한 소프트웨어와 카메라 센서는 ‘어떻게 만들었을까’ 궁금할 정도의 기술력”이라고 말했다.

‘중국 브랜드=짝퉁’이라는 공식을 깬 건 화웨이만이 아니다. 비보는 지난해 1월 ‘CES 2017’에서 세계 최초로 화면에 지문인식 기능을 내장한 스마트폰을 공개했다. 오포는 6월 전후면 카메라 유닛이 본체에 숨어 있다가 사용할 때만 슬라이딩 방식으로 튀어나오도록 해 스마트폰 전면을 디스플레이로 채운 ‘파인드X’를 공개했다.

중국 업체들이 ‘세계 최초’의 타이틀을 차지하기 시작한 원동력은 막대한 연구개발(R&D) 투자다. 화웨이는 통신장비를 개발하며 쌓은 노하우를 스마트폰에 접목해 지난해 R&D에만 897억 위안(약 15조1000억 원)을 투자했다. 전체 매출의 15%나 된다. 샤오미도 6월 홍콩증시에 상장해 100억 달러(약 10조7400억 원) 이상의 자금을 확보하며 R&D 투자 기반을 다졌다.

우수한 기술을 보유한 기업과의 협업이나 인수합병도 기술 혁신 기반이다. 화웨이는 2016년 독일 카메라 업체 ‘라이카’와 공동으로 R&D를 진행하는 조인트랩을 독일 라이카 본사에 설립했다. A 씨는 “라이카는 흑백렌즈 영역에서 독보적 기술을 보유하고 있는 업체다. 화웨이가 라이카로부터 P20 프로에 탑재된 모노렌즈 최적화에 많은 도움을 받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샤오미는 스마트폰 ‘두뇌’ 역할을 하는 애플리케이션 프로세서(AP) 분야에서의 기술력 확보를 위해 2014년 중국 반도체 설계회사 ‘리드코어 테크놀로지’의 모바일 AP 기술을 1억300만 위안(약 168억 원)에 사들였다. 적극적인 인수를 통해 핵심 기술을 내재화하는 전략이다.

○ 프리미엄 시장에서 휘청거리는 한국

투자를 통한 혁신은 중국 기업 이미지를 ‘패스트 팔로어(빠른 추격자)’에서 ‘퍼스트 무버(선도자)’로 바꿔 놨다. 중국 업체들의 경쟁력도 ‘가성비’에서 ‘신기술’로 옮아가고 있다. P20 프로의 유럽 판매 가격은 899유로(약 116만6000원)로, 스마트폰 가격의 심리적 상한선이라 여겨지는 100만 원을 훌쩍 넘겼다. 그런데도 독일, 영국, 프랑스 등 서유럽 국가에서 화웨이 P20 프로 판매량은 기존 프리미엄 모델 ‘P10 플러스’ 대비 약 316%나 늘었다.

혁신 이미지를 중국에 내주면서 국내 업체들의 프리미엄 제품 경쟁력은 하락세를 걷고 있다. 올해 2분기 삼성전자의 스마트폰 평균 판매가격(ASP)은 247달러(약 28만 원)로, 작년 동기 270달러보다 8% 하락했다. 애플은 ‘세계 최초’ 타이틀을 중국에 내줬지만 탄탄한 충성 고객층 덕분에 고가 전략이 아직도 유효하다. 애플의 2분기 아이폰 판매량은 삼성전자(7100만 대)보다 약 3000만 대 적은 4130만 대지만 매출은 약 34조 원으로 삼성전자의 IM사업부문 매출인 24조 원을 한참 웃돈다. 2분기 아이폰 ASP는 724달러(약 81만 원)로 삼성전자와의 격차는 477달러다.

내년부터는 5세대(5G) 스마트폰, 폴더블 스마트폰 등 차세대 제품 상용화로 수년간 정체 상태였던 시장 수요가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스트래티지애널리틱스는 내년 스마트폰 출하량 성장률이 최근 1%대 수준에서 3∼5%로 커질 것으로 내다봤다.

하몽열 한국전자정보통신산업진흥회 실장은 “폴더블폰을 가장 먼저 출시하면 혁신 기업과 혁신 제품이라는 이미지를 동시에 얻을 수 있기 때문에 화웨이는 당장 양산한다기보다는 최대한 완성도를 높인 폴더블폰을 발표해 세계 최초 타이틀을 얻으려 하고 있다. 한국 업체들도 5G와 같은 신기술을 선점하고 폴더블 등 신제품 완성도를 높여 프리미엄 시장 점유율을 되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김재희 기자 jetti@donga.com
#스마트폰#프리미엄 시장#중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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