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 팍팍해진 이란 젊은이들 “가자, 터키로”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9월 20일 03시 00분


화폐가치 폭락-실업난 심화에
서민층, 일자리 찾아 터키로 탈출… 서구로 이민 징검다리로 활용도


‘터키에 집을 사는 방법.’

인터넷 포털 사이트에서 페르시아어(이란 공용어)로 이런 검색어를 넣으면 수십 개의 페이지가 나타난다. 터키에서 부동산을 사거나 거주 비자를 손쉽게 받을 수 있는 방법을 소개해 주겠다는 광고들이다. 오랜 경제제재로 국가 경제가 어려워지자 해외로 ‘탈출’을 결심하는 이란 젊은층이 늘고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다.

영국의 중동 전문 뉴스 사이트 미들이스트아이에 따르면 이란에서 나고 자란 다루시 모자파리 씨도 그중 한 사람이다. 그는 부모의 만류를 무릅쓰고 터키에서 새 삶을 꾸릴 준비를 하고 있다. 지난달 재개된 미국의 대이란 제재가 그의 계획을 앞당겼다. 그는 “며칠 사이 저축한 돈의 가치가 절반 가까이 떨어진 것 같다. 더 경제 상황이 나빠지기 전 터키로 떠날 생각”이라고 말했다.

이란 경제의 허리가 돼야 할 젊은 세대 사이에서 ‘탈이란’ 바람이 불고 있다. 국경을 맞대고 있는 터키가 목적지다. 이민 상담사 모센 아카르네자드 씨는 “미국이 핵합의를 탈퇴하면서 경제 불안감이 높아지기 시작한 최근 4개월 사이 상담자가 눈에 띄게 증가했다”며 “대부분 터키를 제2의 고향으로 삼으려는 사람들”이라고 말했다.

이란 노동부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이란의 실업자 수는 320만여 명. 이 중 고학력자 실업률이 42%에 이른다. 대학 교육까지 마친 이들이 이란에서 만족할 만한 직장을 구할 수 없자 해외 이민으로 눈을 돌리는 경우가 점차 늘고 있다. 이란 의회는 지난달 실업률 급증 및 경제위기 등을 문제 삼아 노동부 장관과 경제부 장관을 차례로 해임했다.

테헤란에 본부를 두고 있는 이란-터키 상공회의소의 레자 카미 회장은 “봄부터 이란 사람들이 터키에서 매매한 주택이나 아파트 수만 1000여 채에 이른다”며 “대부분 5만∼20만 달러(약 5600만∼2억2000만 원) 사이 가격대에 집중돼 있다”고 말했다. 터키에 집을 산 이란 이민자 상당수가 투자보다는 거주를 목적으로 하고, 부유층보다는 서민층이 많은 것으로 알려졌다.

터키 역시 최근 미국과의 외교 마찰로 심각한 경제 위기를 겪고 있다. 달러 대비 리라화 가치는 올해 들어 40% 가까이 떨어졌고, 지난달 물가상승률(17.90%)도 역대 최고치를 경신했다. 터키 정부에 대한 신뢰도마저 낮아지며 외국 투자 자본이 떠나고 있다는 보도도 잇따르고 있다.

그러나 이런 상황이 이란 사람들의 터키 행진을 막지 못하고 있다. 일자리나 안정자산에 대한 투자만이 이민의 원인이 아니라는 뜻이다. 자녀에게 더 나은 교육 기회를 주고, 졸업 후 유럽이나 캐나다 등으로 제2의 이민을 떠날 수 있는 ‘징검다리’로 터키를 활용하겠다는 이란 부모가 상당수다. 앙카라대 역사학과에 재학 중인 이란인 알리 씨는 “이란은 교육의 질도 좋지 않고, 다양한 종교·정치적 압박이 있다”며 “터키에선 자유로움을 느낀다”고 말했다.

BBC 등 외신에 따르면 미국의 대이란 제재 이후 이란의 생활물가가 큰 폭으로 상승하고 있다. 리알화 가치도 연일 역대 최저치를 경신 중이다. 중동 언론들은 11월 미국이 대이란 2차 제재를 시작하면 이란 젊은층의 ‘탈이란’ 흐름이 더 강해질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카이로=서동일 특파원 dong@donga.com
#이란#터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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