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 정상이 19일 발표한 ‘평양 공동선언’에 대해 워싱턴 조야에서는 기대와 우려가 교차하고 있다. 20일 동아일보와 인터뷰한 10인의 북핵 전문가 중에는 비관론 일색이던 과거와 달리 조건부이긴 하지만 ‘영변 핵시설의 영구적 폐기’ 명문화를 거론하며 희망을 봤다는 이들도 있었다. 개성공단과 금강산 관광사업 정상화 합의에 대해서도 ‘불가론’과 ‘불가피론’이 함께 나왔다. 다만 핵 동결 조치만 거론된 데 대해서는 ‘반쪽 합의’라는 지적과 함께 ‘종전선언 참여 반대’ 의견도 강하게 제기됐다.
○ “북-미 협상 마중물 됐다”
전문가들은 1, 2차 남북 정상회담과 달리 비핵화 조치가 공동선언문에 명시된 것을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조셉 윤 전 국무부 대북정책특별대표는 “북한이 영변 핵시설 해체에 대해 입장을 밝힌 것은 의미가 있다”며 “이 지점에서 실타래가 풀릴 수 있다. 미국과 협상을 시작하기에 좋은 출발점을 마련했다”고 평가했다.
패트릭 크로닌 미국신안보센터(CNAS) 아시아태평양안보소장은 “중대한 비핵화 조치를 취할 준비가 돼 있다는 것을 명문화한 것은 협상 전망을 개선한 효과가 있다”며 “특히 미사일 실험장 해체를 사찰단이 검증할 수 있도록 한 것은 비핵화 의지를 재확인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스콧 스나이더 미 외교협회(CFR) 선임연구원도 “문재인 대통령이 비핵화 조치를 포함해 광범위한 합의를 이끌어내는 성과가 있었다”고 평가했고, 게리 세이모어 전 백악관 국가안보회의 대량살상무기정책 조정관은 “트럼프 행정부가 영변 핵시설 해체를 조건으로 두고 북한과 협상을 재개할 수 있는 것만으로도 의미가 충분하다”고 말했다.
○ “핵 동결은 종전선언 충분조건 아냐”
미사일 실험장과 영변 핵시설 폐기는 기존 핵과 무관한 조치라는 점을 두고 한계를 지적하는 의견도 많았다. 이틀간 방한한 뒤 이날 귀국한 존 햄리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대표는 “북한이 보유한 핵과 미사일에 대한 협상 없이는 완전한 비핵화라는 미래로 나아갈 수 없다”고 강조했다. 빅터 차 CSIS 한국석좌도 “북한은 이번에도 한국의 감성적 태도에 호소해 제재를 푸는 데 집중했다”며 “북한이 제시한 비핵화 조치만으로는 한국을 통한 제재 완화에 미국이 동의하지 않을 것이고 종전선언 추진도 미국 내에서 상당한 저항에 부닥칠 것”이라고 강조했다. 윤 선 스팀슨센터 선임연구원은 “미사일 실험장 해체와 영변 핵시설 폐기가 유용한 조치이긴 하지만 핵과 미사일 재고에 대한 정보 제출로 출발해야 하는 비핵화의 단계를 충족시키지 못한다”고 말했다.
2012년 김정은 정권이 북-미 베이징 합의에서 식량 24만 t 등을 지원받고 장거리미사일 발사를 중단하기로 했지만 두 달 뒤 ‘은하 3호’를 발사하고는 인공위성이라고 주장했던 것을 상기시키는 전문가도 있었다. 제니 타운 38노스 편집장은 “북한은 2012년 미사일 발사 중단 합의도 파기했었다”며 “서해 위성발사장(미사일 실험장) 해체는 비핵화라기보다 신뢰 회복 조치로 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 개성공단 재개 찬반양론
상당수 전문가들은 개성공단과 금강산 관광 재개가 대북 제재를 약화시키는 더 큰 구멍이 될 수 있다며 우려했다. 브루스 클링너 헤리티지재단 선임연구원은 “남북 정상이 합의한 경제협력은 유엔 결의안과 미국 법을 정면으로 위반하는 것”이라며 “워싱턴은 비핵화 진전 없이 평양과의 관계 개선에 집착하는 문 대통령의 불균형한 접근에 짜증이 나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적절한 보상 없이는 비핵화를 유도하기 어렵다는 현실론도 조금씩 고개를 들고 있다. 로버트 갈루치 전 북핵특사는 “제재를 단계적으로 완화하지 않으면서 비핵화만을 요구하는 협상 방식은 비현실적”이라면서 “한국 정부는 개성공단과 금강산 관광사업 재개 문제를 미국과 사전 협의하면서 이를 지렛대로 북한의 비핵화를 유도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세이모어 전 조정관도 “북-미가 영변 핵시설 폐기를 합의하면 미국은 남북 경협을 지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