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테네시주 클리블랜드시에 사는 변호사 러셀 킹 씨(68)는 13일 오전 4시 자신의 포드150 픽업트럭을 몰고 집을 나섰다. 그는 시속 155마일(약 250km)의 강풍을 동반한 4등급 허리케인 ‘마이클’이 휩쓸고 지나간 플로리다주 멕시코비치로 곧장 향했다. 지난해 조카 르브론 래키 씨(54·방사선과 전문의)와 함께 지은 해변 별장 ‘샌드팰리스(모래궁전)’가 무사한지 직접 확인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샌드팰리스는 킹 씨가 평소 꿈꾸던 드림하우스인 모래 해변의 궁전 같은 집이라는 의미로 직접 붙인 이름이다.
길 곳곳이 끊겨 7시간 만에 도착한 그는 해변 주택 대부분이 강풍에 날아가거나 무너져 폐허가 된 참혹한 현장을 목격했다. 옆집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다른 집은 지붕과 벽에 큰 구멍이 생겼고 이 집을 빌렸던 2명은 실종돼 수색작업이 진행 중이었다.
하지만 방 5개, 욕실 5개짜리 샌드팰리스는 거의 멀쩡했다. 피해라고는 계단이 날아가 사다리를 놓고 들어가야 했던 것과 집안 샤워실 창문에 금이 간 것 정도였다. 뉴욕타임스(NYT)는 마이클이 상륙한 멕시코비치의 약 1마일(약 1.6km)에 걸친 주택가 중 4분의 3이 피해를 입었지만 땅보다 높이 올려 지은 킹 씨의 주택 샌드팰리스는 그 블록에서 유일하게 멀쩡한 해변 주택이었다고 전했다.
○ 방향 튼 허리케인에 허 찔린 주민들
북쪽엔 앨라배마주와 조지아주, 남쪽으로 멕시코만에 붙어 있는 플로리다주 서부 지역은 ‘팬핸들’로 불린다. 지도에서 프라이팬 손잡이처럼 옆으로 툭 튀어나온 모양으로 보여 이런 이름이 붙었다. 이곳의 멕시코비치는 통상 대형 허리케인의 무풍지대로 꼽혔다.
팬핸들 지역의 건축물 안전기준도 상대적으로 느슨했다. 허리케인 상습 피해 지역인 남부는 1992년 5등급 허리케인(시속 157마일 이상) ‘앤드루’에 큰 피해를 입은 뒤 시속 175마일의 강풍을 견디는 방풍(防風) 설계를 의무화했다. 반면 허리케인 피해가 상대적으로 적은 팬핸들 지역은 이보다 약한 시속 120∼150마일의 기준이 적용됐다. 그나마 해안에서 1마일 이상 떨어진 지역엔 2007년 이후 강화된 기준에 따라 건물이 지어졌다. 멕시코비치 주택의 대부분이 안전기준이 강화되기 훨씬 전에 지어져 시속 155마일의 강풍을 동반한 마이클의 피해가 컸다고 NYT는 분석했다.
○ 시속 400km 이상 초대형 허리케인 대비해 건재
반면 샌드팰리스는 시속 250마일(약 400km)의 초강력 허리케인에 대비해 설계됐다. 12m 기둥을 땅에 박고 벽에 단단히 고정시켜 건물을 높였다. 허리케인 때문에 바닷물이 범람해도 물이 집 기둥 밑으로 흘러 나가도록 설계한 것이다. 강한 바람을 견딜 수 있게 콘크리트와 철제 케이블 등을 넣어 집을 보강했다. 바람이 파고들어 지붕을 날려버리지 않도록 지붕 공간도 최소화했다. 집 주변 모래 언덕엔 소금기에 강한 식물을 심어 바람을 막았다. 래키 씨는 “대를 이어 견딜 수 있는 집을 지어야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킹 씨도 “지구가 더 더워지고 태풍은 더 강력해지고 있다고 생각한다”며 “이런 폭풍에 익숙하지 않은 해안가의 주민들은 대비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기후변화에 따라 초대형 허리케인과 같은 자연재해의 위험은 커지고 있지만 과거 경험에 안주할 경우 새로운 위험을 간과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찰리 데인저 전 마이애미 데이드 카운티 건축물관리 책임자는 “이런 폭풍을 견디도록 건물을 재건축하면 득이 된다. 생명과 인프라 손실을 최소화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미국 경제 전문지 포브스에 따르면 보험 관련 기관인 ‘기업 및 가정 안전을 위한 보험연구소(IIBHS)’가 권고한 허리케인 방지 조치를 적용하는 데 3만 달러(약 3400만 원) 정도가 드는 것으로 추산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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