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우디아라비아 출신 언론인 자말 카슈끄지 실종 사건에 대한 미국의 애매한 태도가 연일 논란이 되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사우디에 우호적인 태도를 취하고 있는데다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의 사우디 방문 과정도 구설에 올랐다.
뉴욕타임스는 17일(현지시간) 폼페이오 장관의 사우디 방문 및 왕실 환담 과정을 보도하며 “언론인 실종 사건에 연루된 혐의를 받고 있는 사우디 왕실 지도자들과 웃으며 앉아있던 폼페이오의 모습은 원칙을 준수하는 외교와는 거리가 멀었다”고 비판했다. CNN도 “폼페이오는 악수를 하기 위해 세계를 가로질렀다”고 비꼬았다.
브루킹스 연구소의 중동정책 학자인 사디 하미드 역시 자신의 트위터를 통해 “언론인이 살해당하지 않았다는 듯 왕세자와 함께 활짝 웃고 있는 폼페이오의 사진은 주목할 만하다”며 “매우 당황스럽다. 폼페이오는 심각하게 호락호락한 사람으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폼페이오 장관이 사우디를 떠나며 카슈끄지 실종 사건에 대해 함구한 점도 비판 대상이 됐다. 이날 사우디 수도 리야드 소재 킹 살만 공군기지를 통해 출국하는 과정에서 기자들과 만난 폼페이오 장관은 카슈끄지 생존 여부에 대한 질문에 “어떤 사실도 말하고 싶지 않다”고 답변을 거부했다.
서맨사 파워 전 유앤주재 미국 대사는 이를 두고 “진실은 사우디가 (폼페이오로 하여금) 어떤 사실도 말하지 않기를 기대한 것”이라고 비꼬았다. 카슈끄지 실종 사건을 다루기 위해 사우디를 방문했던 폼페이오가 정작 사우디 입장을 대변하고 있다는 것이다.
폼페이오 장관은 물론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역시 카슈끄지 실종 사건에 대한 소극적 태도를 견지하고 있다. 가디언에 따르면 터키 당국은 카슈끄지 사망 관련 녹음 파일을 미국과 사우디에 전달했다고 밝혔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취재기자들에게 “만약 녹음파일이 ‘있다면’ 달라고 요청했다”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와 관련해 “사우디는 중동에서 매우 중요한 동맹국이다. 우리는 이란을 막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란 제재를 위해 사우디와의 관계를 우호적으로 유지해야 한다는 취지다. 그는 또 “사우디는 군사장비 등을 (미국으로부터) 엄청나게 구입하고 있다”고도 했다. 미국 국익 차원에서도 사우디와의 관계는 중요하다는 논리다.
트럼프 대통령의 개인적 이득이 이 사건에 작용하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가디언은 “트럼프가 사우디와의 사적인 경제 관계를 부인했지만 사우디 고객들에게 수백만 달러의 요트와 아파트를 팔았으며, 사우디 고객들은 여전히 트럼프의 호텔을 이용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문제는 카슈끄지 실종 사건의 정황이 드러날수록 그 잔학성 때문에 국제적 공분이 점점 커지고 있다는 것이다.
터키 친정부 성향 일간지인 예니 샤팍에 따르면 카슈끄지는 지난 2일 터키 이스탄불 주재 사우디 영사관에 들어서자마자 구타와 손가락을 자르는 고문을 당하고 참수됐다. 카슈끄지의 시신은 7분 만에 절단됐다.
예니 샤팍은 살라 무함마드 알 투바이라는 사우디 법의학 전문가가 카슈끄지의 시신 절단 과정에 투입됐으며, 시신을 절단하는 동안 헤드폰을 이용해 음악을 들었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조지 W 부시 대통령 시절 미 국무부 차관을 지냈던 니컬러스 번스 하버드대 케네디대학원 교수는 이와 관련해 “지금은 범죄 책임을 부인하고 있는 사우디 왕실에 엄격히 대처하고 사우디를 제재할 때”라며 “민주국가로서 우리가 가진 신뢰성이 흔들리고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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