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일(현지시간) 바티칸 교황궁에서 문재인 대통령을 만난 프란치스코 교황이 방북 여부에 대해 “나는 갈 수 있다”고 답하면서 사상 첫 교황의 북한 방문이 실현될 가능성이 커졌다. 교황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초청에 긍정적인 의사를 밝히면서 교황 방북을 위한 세부 조율이 본격적으로 시작될 것으로 보인다. 문 대통령은 이날 38분 간 교황과 단독 면담을 갖고 한반도 평화를 위한 교황의 지지와 방북 등을 부탁했다.
● 교황 “멈추지 말고 앞으로 나아가라”
이날 오후 12시 10분, 교황궁 2층에 있는 서재에서 교황을 만난 문 대통령은 “교황님이 평양을 방문하시면 열렬히 환영하겠다”는 김 위원장의 메시지를 대신 전달했다. 이어 문 대통령은 “김 위원장이 초청장을 (교황청에) 보내도 되겠느냐”고 물었고 교황은 “문 대통령께서 (김 위원장 대신) 전한 말씀으로도 충분하나 공식 초청장을 보내주면 좋겠다. 초청장이 오면 무조건 응답을 줄 것이고 나는 갈 수 있다”고 답했다고 윤영찬 대통령국민소통수석이 전했다. 문 대통령은 또 “김 위원장이 그동안 교황께서 평창올림픽과 (남북) 정상회담 때 마다 남북 평화를 위해 축원해주신데 대해 감사하다고 인사했다”고 전하자 교황은 “오히려 내가 깊이 감사하다”고 답했다.
이처럼 교황이 김 위원장의 메시지를 전달받은 자리에서 곧바로 긍정적인 뜻을 밝히면서 교황의 방북은 본격적인 조율 단계로 들어갔다는 분석이다. 내년 교황의 일본 방문이 예정되어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북한과 일본을 연이어 방문할 가능성도 점쳐진다.
교황의 방북이 성사된다면 한반도 비핵화 협상은 물론 평화 정착도 또 한 번의 전기를 맞을 것으로 보인다. 교황은 2014년 12월 미국과 쿠바가 53년 만에 국교를 정상화하는 과정에서 협상을 주선하며 적극적인 역할을 한 경험이 있다.
실제로 교황은 2013년 취임 이후 여러 차례에 걸쳐 한반도에 대한 각별한 관심을 보였다. 2014년 8월 아시아에서 첫 번째로 한국을 방문한 교황은 평창 겨울올림픽, 4월 판문점 남북 정상회담, 6월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 등 올해 한반도의 주요 국면마다 직접 메시지를 내고 한반도의 평화를 기원했다. 교황은 이날 면담에서도 “한반도에서 평화 프로세스를 추진 중인 한국 정부의 노력을 강력히 지지한다”며 “멈추지 말고 앞으로 나아가라, 두려워하지 말라”고 말했다.
● 배석자 없는 文-교황 만남
교황과 문 대통령의 이날 만남은 다른 정상회담과는 다른 형식으로 진행됐다. 가톨릭에서는 교황과의 접견을 알현(audience)라고 하고, 문 대통령과의 만남은 개인 알현이었다. 개인 알현은 배석자가 없는 게 원칙이기 때문에 이날 38분 간 진행된 문 대통령과 교황과의 만남에는 청와대 관계자가 한 명도 배석하지 않았다. 통상 정상회담의 경우 우리 측 통역과 상대국 통역이 각각 배석하지만, 이날 만남에서는 정부 공식 통역이 아닌 한현택 신부가 통역을 맡았다. 아르헨티나 출신 교황은 영어, 스페인어, 이탈리아어 등에 모두 유창하지만 이날 만남에서는 이탈리아어를 사용했다.
여기에 교황 알현은 고해성사의 성격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인사말만 공개 됐을 뿐 모두 발언 등은 공개되지 않았다. 가톨릭에서 신부는 고해성사의 내용을 절대 외부에 알려서는 안된다. 때문에 이날 문 대통령과 교황이 나눈 대화는 윤영찬 대통령국민소통수석비서관이 문 대통령에게 별도로 ‘취재’해서 알려졌다 면담장 밖에서 대기하고 있던 윤 수석은 면담을 마치고 나오는 문 대통령을 따로 만나 일부 대화 내용을 전달 받고, 이를 수행 중인 취재진에게 서면으로 전달했다. 청와대는 “교황과의 면담 내용은 비공개가 관례이나, 사전에 바티칸과 협의를 거쳐 면담 주요 내용을 공개하기로 합의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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