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농업, 광물 분야 현황을 점검하기 위해 최근 방북한 글로벌 기업들 외에도 투자 가능성을 조사하기 위한 해외기업들의 물밑 대북 행보가 이어지고 있다. ‘비핵화 진전 없이 제재 완화는 없다’는 미국 주도의 기조가 유지되고 있는 동시에 일부 해외 기업들은 비핵화 협상 이후를 상정하고 투자 기회를 선점하려는 것이다.
국내 금융투자업계 관계자 및 대북 소식통에 따르면 미국의 곡물회사 외에 발전설비, 농기계 분야 업체들도 방북을 추진 중이다. 독일에서는 기술·기계 분야 업체들이 나진, 선봉 지역을 눈여겨보는 것으로 알려졌다. 호주의 한 업체는 북한의 천연자원에 관심을 표명하며 국내 관련 업체에 컨설팅을 의뢰했다는 전언이다. 중국 베이징에서는 북측과 사업 양해각서(MOU)를 체결하는 기업들도 늘었다. 한 관계자는 “미국과 유럽, 아시아 등지의 기업이 각국의 한국 주재 대사관을 통해서 투자 컨설팅 요청을 해오고 있다”며 “북한을 잘 몰랐던 해외 중견기업 중에서 새로운 활로를 찾고 있는 기업들의 움직임이 눈에 띈다”고 전했다. 삼성증권의 북한투자전략팀은 최근 “이르면 올해 말부터 남북 경협 시대가 본격화된다”는 내용의 보고서를 내놓기도 했다.
네덜란드의 투자 자문회사인 ‘GPI컨설턴시’는 대북 투자에 대한 유럽인의 관심이 늘면서 다음 달 중순 유럽 일부 언론매체 기자단의 방북 프로그램을 준비 중이라고 자유아시아방송(RFA)이 17일 보도했다. 이 회사의 폴 치아 대표는 “기자단 방북은 올해 2번째”라며 “북한의 정치와 경제, 특히 대북 투자 가능성을 알아보는 데 중점을 두고 있다”고 설명했다.
18일 서울 영등포구 전경련회관 콘퍼런스센터에서 열린 제30차 한미재계회의에 이도훈 외교부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이 참석한 것도 눈길을 끄는 대목이다. LG 롯데 한화 한진 등 국내 주요 그룹은 물론이고 무역협회와 로펌, 주한미국상공회의소(AMCHAM·암참) 관계자들이 참석한 이날 자리에 북핵 협상대표가 특별초청을 받은 것이다. 비공개로 이뤄진 이날 콘퍼런스에서 이 본부장은 “대북 투자는 비핵화의 진전이 있어야 진행이 가능하다”는 점을 거듭 강조하는 동시에 북한이 경제발전 의지를 수차례 표명해왔다는 사실을 함께 전한 것으로 전해졌다. 정부는 민간기업들의 투자 청사진이 경제건설에 총력을 기울이는 북한엔 또 다른 비핵화 유인 카드가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물론 북핵 전문가들은 대북 투자 기회를 노리는 기업들의 행보를 여전히 우려 섞인 시각으로 바라보고 있다. 아직 가시적인 비핵화 조치에 나서지 않는 상황에서 섣부른 기대감이나 낙관론을 경계해야 한다는 것. 대통령외교안보수석비서관을 지낸 천영우 한반도미래포럼 이사장은 “대북 투자를 선점하려는 조급증이 결과적으로 북한에 잘못된 메시지를 줘서 비핵화 협상 동력을 약화시킬 수도 있다”며 “제재가 완화되지 않고는 불가능한 대북사업을 논의하기에 앞서 지금은 북한 비핵화 진전 노력에 집중할 때”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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