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황 “평화 프로세스 멈추지 말고 나아가라… 두려워 말라”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10월 19일 03시 00분


[교황 방북 의사 표명]사상 첫 교황 방북 유력

18일(현지 시간) 바티칸 교황궁에서 문재인 대통령을 만난 프란치스코 교황(82)이 방북 여부에 대해 “나는 갈 수 있다”고 답하면서 사상 처음으로 교황의 북한 방문이 실현될 가능성이 커졌다. 또 프란치스코 교황은 한반도 평화를 위한 문 대통령의 움직임에 대해 다시 한 번 힘을 실어줬다. 문 대통령은 이날 38분간 교황과 단독 면담을 갖고 한반도 평화를 위한 교황의 지지와 방북 등을 부탁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초청에 긍정적인 의사를 밝히면서 교황 방북을 위한 세부 조율이 본격적으로 시작될 것으로 보인다. 프란치스코 교황 방북을 위한 북한과 교황청 간의 논의가 시작된다면 북한의 개혁·개방 움직임도 더 가속화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 교황 “멈추지 말고 앞으로 나아가라”

이날 낮 12시 10분, 교황궁 2층에 있는 서재에서 프란치스코 교황을 만난 문 대통령은 “교황님이 평양을 방문하시면 열렬히 환영하겠다”는 김 위원장의 메시지를 전달했다. 문 대통령은 김 위원장의 구두 메시지 외에 별도의 공식 초청장을 가지고 오지 못했다는 점을 감안해 “김 위원장이 초청장을 (교황청에) 보내도 되겠느냐”고 물었고, 프란치스코 교황은 “초청장이 오면 무조건 응답을 줄 것이고 나는 갈 수 있다”고 답했다고 윤영찬 대통령국민소통수석비서관이 전했다.

이처럼 프란치스코 교황이 김 위원장의 메시지를 전달받은 자리에서 긍정적인 뜻을 밝히면서 교황 방북은 본격적인 조율 단계로 들어갔다는 분석이 나온다. 내년 일본 방문이 예정되어 있는 점을 감안하면 프란치스코 교황이 북한과 일본을 연이어 방문할 가능성도 점쳐진다. 다만 프란치스코 교황은 방북 시점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 윤 수석은 “시점에 대한 (교황) 말씀은 없었다”고 전했다.

교황의 방북이 성사된다면 한반도 비핵화 협상은 물론 평화 정착도 또 한 번의 전기를 맞을 수 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2014년 12월 미국과 쿠바가 53년 만에 국교를 정상화하는 과정에서 협상을 주선하며 적극적인 역할을 한 경험이 있다. 한 외교 소식통은 “최근 비핵화 협상 재개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 북-미가 다시 한 번 이견을 보일 경우 프란치스코 교황의 방북으로 또 다른 돌파구가 열릴 수 있다”고 말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2013년 취임 이후 여러 차례에 걸쳐 한반도에 각별한 관심을 보였다. 2014년 8월 아시아에서 첫 번째로 한국을 방문한 교황은 평창 겨울올림픽, 4월 판문점 남북 정상회담, 6월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 등 올해 한반도의 주요 국면마다 직접 메시지를 내고 한반도의 평화를 기원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이날 면담에서도 “한반도에서 평화 프로세스를 추진 중인 한국 정부의 노력을 강력히 지지한다”며 “멈추지 말고 앞으로 나아가라, 두려워하지 말라”고 말했다.

○ 배석자 없는 文-교황 만남

문 대통령은 이날 프란치스코 교황을 만나 “저는 대한민국 대통령으로 방문했지만, 또 디모테오라는 세례명을 가진 가톨릭 신자이기도 하다. 이렇게 교황님을 뵙게 되어서 너무나 영광스럽다”고 인사했다. 이어 문 대통령은 “어제 한반도 평화를 기원하는 미사를 성 베드로 대성당에서 매우 영광스럽게 올려주셨다. 그 배려에 감사드린다”고 덧붙였다.

이어 프란치스코 교황과 문 대통령은 양측 배석자가 없는 단독 면담을 가졌다. 가톨릭에서는 교황과의 접견을 알현(audience)이라고 하는데, 이날 문 대통령과의 만남은 ‘사적 알현’으로 진행됐다. 사적 알현은 배석자가 없는 게 원칙이기 때문에 이날 38분간 진행된 문 대통령과 교황의 만남에는 청와대 관계자가 한 명도 배석하지 않았다. 통상 정상회담의 경우 우리 측 통역과 상대국 통역이 각각 배석하지만, 이날 만남에서는 정부 공식 통역이 아닌 한현택 신부가 통역을 맡았다. 아르헨티나 출신 프란치스코 교황은 영어, 스페인어, 이탈리아어 등에 모두 유창하지만 이날 만남에서는 이탈리아어를 사용했다.

교황 알현은 고해성사의 성격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인사말만 공개됐을 뿐 모두발언 등은 공개되지 않았다. 가톨릭에서 신부는 고해성사의 내용을 절대 외부에 알려서는 안 된다. 이 때문에 이날 문 대통령과 프란치스코 교황이 나눈 대화는 윤 수석이 문 대통령에게 별도로 ‘취재’를 해서 알려졌다. 면담장 밖에서 대기하고 있던 윤 수석은 면담을 마치고 나오는 문 대통령을 따로 만나 일부 대화 내용을 전달받고, 이를 취재진에게 서면으로 전달했다. 청와대는 “교황과의 면담 내용은 비공개가 관례이나, 사전에 바티칸과 협의를 거쳐 면담 주요 내용을 공개하기로 합의했다”고 밝혔다.

이날 문 대통령과 낮 12시 10분부터 38분간 단독 면담을 가진 프란치스코 교황은 수행원들과의 인사, 기념 촬영을 마치고 낮 12시 58분경 퇴장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퇴장하며 “대통령님과 평화를 위해 저도 기도하겠다”고 말했고, 문 대통령은 “교황님은 가톨릭의 스승일 뿐 아니라 인류의 스승”이라고 화답했다.

바티칸=한상준 기자 alwaysj@donga.com
#사상 첫 교황 방북 유력#한반도 평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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