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최초의 여성 연방대법관인 샌드라 데이 오코너가 23일(현지시간) 치매 투병 사실을 고백했다. AP통신과 BBC 등 주요 언론에 따르면 오코너는 이날 ‘친구들과 미국 동료들’을 수신자로 기재한 편지를 통해 이같이 밝혔다.
오코너는 편지에서 최근 의사로부터 “공인으로서의 삶을 더 이상 영위할 수 없다”는 진단을 받았다고 설명했다. 그는 지난 2006년 은퇴한 뒤 한동안 자신이 설립한 교육기관 관련 활동 등으로 모습을 내비쳤지만, 2년여 전부터 공개적인 발언을 내놓지 않았다.
그는 “많은 사람들이 내 상태를 물어왔기 때문에 내가 겪고 있는 변화를 설명하기로 마음먹었다”며 “치매를 앓고 있는 내 마지막 삶은 힘겹겠지만, 나는 여전히 내 삶에 주어졌던 많은 축복들에 감사하고 있다”고 했다. 이어 “애리조나 사막에 살던 어린 카우걸(cowgirl)이 연방대법원의 첫 여성 대법관이 되리라고는 나조차 상상하지 못했다”며 “모든 사람들에게 축복이 있기를 바란다”고 편지를 끝맺었다.
오코너의 치매 투병 사실이 알려지자 미 법조계와 정치계 인사들은 일제히 안타까움을 표하며 그의 업적을 기렸다.
존 로버츠 연방대법원장은 같은 날 성명을 내고 오코너의 투병에 슬픔을 표한 뒤 “(오코너는) 여성에게 주어진 장벽을 무너뜨린, 미국 역사에 남을 뛰어난 인물”이라며 “어떤 질병도 그가 자신이 개척한 길을 따라오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남겨준 영감을 빼앗아갈 수 없을 것”이라고 했다.
캘리포니아주 상원 의원인 카멀라 해리스는 자신의 트위터를 통해 “(오코너가) 젊은 여성들에게 길을 닦아줬다”고 했다. 이 밖에도 알츠하이머협회는 과거 치매를 앓던 남편의 간병인으로서 의회에 나와 치매 가족 지원 필요성을 증언했던 점 등을 거론하며 감사를 표했다.
오코너는 1930년 텍사스주 엘패소 카운티에서 태어나 16살에 스탠퍼드대에 입학했다. 그는 1952년 스탠퍼드 로스쿨을 클래스 3등으로 우수 졸업했지만 여성이라는 이유로 변호사직이 아닌 법무비서직을 제안 받는 등 로펌 입사에 어려움을 겪었다. 그는 이후 캘리포니아주 산마테오 카운티 검사보로 공직 활동을 시작해 애리조나주 검찰 부총장을 거쳐 주 상원의원으로 활동했다. 1981년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 지명으로 미국 역사상 첫 여성 대법관이 됐다.
오코너는 대법관 취임 후인 1992년 임신 기간과 부모 및 배우자의 동의 여부에 따라 낙태권을 제한해온 펜실베이니아 주법의 위헌성을 다툰 ‘가족계획 대 케이시 사건(Planned Parenthood v. Casey)’에서 낙태권을 제한해선 안 된다는 입장을 취했다. 이는 미국 내 여성의 낙태권을 최초로 인정한 역사적 판결인 1973년 ‘로 대 웨이드 판결(Roe v. Wade)’을 지지한 것으로, 오코너는 이후 여성 권리 증진에 기여한다는 평가를 받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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