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리카 대륙에서 ‘여성 정치인’ 바람이 불고 있다. 지난달 에티오피아 의회는 사상 첫 여성 대통령을 선출했다. 르완다와 이집트, 말리 등에서도 여성 장관 임명이 잇따르고 있다. 할례(割禮)를 비롯해 미성년자 강제 결혼, 명예 살인 등 여성 인권 후진국으로 악명이 높은 아프리카 대륙에서 변화의 바람이 조금씩 불고 있다.
“에티오피아 같은 가부장적인 사회에서 여성 대통령이 선출된 것은 미래를 위한 새 기준이 될 것이다. 독립적 의사결정권자로서 여성을 정상화하는 것이다.”
에티오피아 의회가 지난달 25일 여성 외교관 출신인 사흘레워크 제우데(68)를 만장일치로 대통령으로 선출하자 에티오피아 총리실 수석보좌관은 트위터를 통해 이 같은 의미를 부여했다. 여성은 남성의 소유물에 불과하고, 지도자가 될 수 없다는 과거 인식이 틀렸다는 것을 입증하기 위한 에티오피아 정부의 선택이었다는 뜻이다.
의원내각제인 에티오피아는 총리가 실질적으로 국정을 담당한다. 대통령은 상징적인 국가 원수로 통한다. 대통령은 법률 공포, 외국 대사의 신임장 접수, 사면권 행사 등의 권한을 갖는다. 2005년 서아프리카의 라이베리아에서 세계 최초의 흑인 여성 대통령이 탄생한 뒤로 아프리카 대륙에서 여성 대통령이 나온 것은 제우데 대통령까지 포함해 4차례다.
제우데 신임 대통령은 대통령직 수락 연설에서 “나는 이미 여성에 대해 많은 말을 했지만 그것은 이제 막 시작일 뿐”이라며 임기 중 여성인권 향상을 위해 노력하겠다는 강한 의지를 내비쳤다. 그는 또 “남성과 여성의 인권이 동등한 수준이 될 때, 에티오피아는 후진국이란 오명을 벗고 번영으로 나아갈 것”이라고 말했다. 유엔 성평등지수(2017년 기준)에서 에티오피아는 160개국 중 121위로 하위권이다.
아비 아흐메드 에티오피아 총리(42)는 지난달 내각을 개편하면서 남성 전유물로 여겨졌던 국방장관을 비롯해 신설된 평화장관에도 여성을 임명하는 등 전체 장관 20명 중 절반을 여성으로 채웠다. 이달 1일에는 연방 대법원장, 5일에는 정부 대변인도 여성으로 지명했다. 에티오피아에서 이렇게 많은 여성이 정부 고위직에 포진한 적은 없다.
이 같은 변화의 바람은 동아프리카 르완다, 서아프리카 말리, 북아프리카 이집트 등 아프리카 대륙 곳곳에서 불고 있다. 그동안 교육이나 복지, 의료 등 일부 영역에서만 여성 정치인이 발탁됐던 것과는 상황이 달라졌다. 외교, 무역, 국방 등 여러 영역에서 여풍(女風)이 불고 있다.
폴 카가메 르완다 대통령은 지난달 “아프리카 국가들이 직면하고 있는 사회·경제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남성과 여성이 함께 일해야 한다”며 무역장관을 포함해 내각 절반을 여성으로 꾸렸다. 이집트도 6월 신임 보건장관과 환경장관 자리에 여성을 앉혔다. 이집트는 현재 장관 32명 중 8명이 여성으로 역대 가장 많은 여성 장관을 두고 있다. 말리 대통령도 외교장관을 포함해 상당수 여성을 새 내각에 포진시켰다. 이집트의 성평등지수는 101위, 말리는 157위다. 이 밖에 우간다, 에리트레아, 탄자니아 등에서는 여성의 정치적 대표성을 높이기 위해 국회의원에 여성 쿼터를 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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