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대전오월드 사육장을 탈출한 퓨마 ‘뽀롱이’는 한국 사회에 ‘동물원의 필요성’에 대한 고민에 불을 지폈다. 국내 일부 지방 및 실내 동물원의 열악한 환경이 부각되면서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동물원을 폐지해달라는 글이 수십 건 올라왔다. 좁은 사육장에 동물을 가두는 것이 비윤리적이라는 주장이었다. 반면 멸종위기 야생동물의 종(種) 복원 연구를 위해 동물원의 존속이 필요하다는 반론도 만만치 않다. 동물들이 자연 그대로의 환경에서 생활하며 야생성을 유지하도록 해 동물원의 모범사례로 꼽히는 영국 ‘요크셔 야생동물공원(YWP)’을 지난달 3일 찾아갔다.
○ 4만 m² 야생에 북극곰 4마리가 산다
런던에서 철도로 2시간, 약 250km 떨어진 동커스터에 펼쳐진 약 40만 m²의 평원에는 콘크리트와 철장으로 상징되는 일반적인 동물원의 모습을 볼 수 없었다. 영국 중부지방의 습지와 숲, 초원의 형태가 자연 그대로 보존돼 있었다.
YWP에서 북극곰 사육을 책임지고 있는 사이먼 마시 사육사(43)는 “2009년 개장 때부터 동물을 가두는 게 아닌 야생에서의 모습 그대로 보호하는 원칙을 갖고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YWP에는 북극곰 4마리가 살고 있다. 영국에서 유일하게 북극곰이 있는 곳이다. ‘프로젝트 폴러(북극)’라는 이름의 사육장은 면적이 4만 m²에 이른다. 내부에는 물 10만 L가 채워진 7m 깊이의 호수도 있다. 식사 시간에 곰 입가의 흰 털이 고기의 붉은 피로 적셔지는 모습을 보니 이들이 야생동물이라는 것이 실감났다. 먼저 식사를 마친 다른 곰이 남은 고기에 관심을 보이면 크게 소리를 지르며 신경전을 벌였다. 주변 숲에서 날아온 새들은 북극곰들이 남길 고기 찌꺼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 곰들은 네덜란드 독일 러시아의 동물원에서 이사를 왔다. 활동 반경이 넓은 북극곰이 지내기에는 YWP가 최적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마시 사육사는 “프로젝트 폴러에서는 곰들이 작은 야생동물을 직접 사냥하고, 다이빙하며 수영하는 등 야생성을 회복하며 살게 된다”고 소개했다.
이런 이유로 국내에 있는 유일한 북극곰이었던 경기 용인시 에버랜드 동물원의 ‘통키’도 YWP와의 동물 교류 차원에서 12월 이곳으로 이주할 예정이었다. 5월에는 킴 베리 윌킨스 YWP 사육사(33·여)가 방한해 통키의 상태를 살펴봤다. YWP는 통키가 적응할 수 있도록 기존 북극곰들과의 첫 인사, 바뀐 자연환경에서의 식습관 등을 준비했었다. 하지만 통키가 지난달 노환으로 숨을 거둬 이주 계획은 무산됐다.
○ 동물원의 ‘동물복지’ 고민할 때
YWP에는 70여 종, 400여 마리의 동물이 살고 있다. 모두 국제자연보전연맹(IUCN)이 멸종위기로 지정한 야생동물이다. 하지만 야생에서 포획해온 동물은 없다. 모두 세계의 다른 동물원에서 사정상 사육을 어려워하던 동물이다. 동물원의 규모를 과시하기 위해 동물을 종류별로 채우는 ‘백화점식 전시’도 없다.
YWP의 이름을 알리게 된 사건은 2010년 2월 ‘라이언 레스큐(사자 구조)’가 대표적이다. 루마니아의 한 동물원에서 더럽고 좁은 철창 우리에 갇혀 지내던 사자 13마리를 데려왔다. 이들은 폭포와 실개천, 들판이 어우러진 사자 사육장에서 건강과 야생성을 되찾고 있다. 윌킨스 사육사는 “YWP에는 스트레스로 인한 반복된 행동을 하는 동물이 없다”며 “입장료 수입의 대부분을 동물의 야생성 회복에 다시 투자한다”고 소개했다. 지난해에 학생 8만여 명을 포함해 76만여 명이 YWP를 찾았다.
실제로 YWP는 ‘관람하기 힘든 동물원’으로 불린다. 동물에게 더 넓은 공간을 주고 야생성 회복을 우선시하기 때문이다. 국내 일부 동물원처럼 영업시간 내내 동물을 사람에게 노출시키는 건 이곳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실제 기자는 동물원 전체를 꼼꼼히 둘러봤지만 사육장에서 표범을 발견하지 못했다. 숨어 있었기 때문이다. 마시 사육사는 “야생에서 꽁꽁 숨어 사냥감을 노리는 표범의 습성을 존중하는 것”이라며 “관람객이 표범을 보고 싶어 해도 억지로 데리고 나오는 일은 절대 없다”고 말했다. 한국의 동물원 폐지론에 대해서는 “안타까운 일”이라며 “동물원 폐지론은 더 모범적인 운영으로 극복해야 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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