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 주석이 17일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가 열린 파푸아뉴기니에서 문재인 대통령을 만나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으로부터 북한을 방문해 달라는 초청을 받은 상태다. 내년에 시간을 내서 방북할 생각”이라고 밝혔다. 이에 따라 연말 북핵 관련 이벤트로 거론되던 2차 북-미 정상회담, 김 위원장의 러시아 방문은 물론 시 주석의 방북도 모두 내년 이후로 미뤄지게 됐다.
올해 2월 김여정 노동당 제1부부장의 방남부터 촉발된 한반도 비핵화 대화 기조가 올해 구체적인 성과는 내지 못한 채 해를 넘기게 된 것. 청와대가 주력했던 연내 종전선언도 사실상 어렵게 된 만큼 이제 북핵 비핵화 논의는 그야말로 마라톤과 같은 장기 레이스에 접어들게 됐다. 연내 예상됐던 비핵화 이벤트 중 아직 일정이 정해지지 않은 김 위원장의 서울 답방도 내년 이후에 결정될 가능성이 높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 집권 3년차에도 계속되는 ‘북핵 시계’
싱가포르, 파푸아뉴기니 방문을 마치고 18일 귀국한 문 대통령은 이번 순방에서 미국 중국 러시아와 연쇄 접촉했다. 미국은 제2차 북-미 정상회담과 북-미 고위급 회담을, 러시아는 김 위원장의 방러를, 중국은 시 주석의 방북을 저울질하고 있다. 그러나 3국 모두 북한과 관련한 주요 이벤트의 시점을 한결같이 내년이라고 못 박았다. 특히 미국은 마이크 펜스 부통령을 통해 “2차 북-미 정상회담에서는 핵·미사일 기지에 대한 검증 가능한 계획이 있어야 한다”며 회담 재개의 조건도 구체적으로 밝혔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대북 협상에 대해 “서두를 것 없다”고 선언한 상황에서 회담의 ‘속도’보다 ‘내용과 콘텐츠’에 집중하겠다는 뜻을 분명히 한 것이다.
이에 따라 연내 어떤 식으로든 구체적인 비핵화 모멘텀을 만들려던 청와대의 구상도 수정이 불가피하게 됐다. 여권 관계자는 “청와대도 물꼬가 트인 다양한 남북 교류 채널은 계속 유지하면서 보다 진전된 비핵화 조치를 내놓을 수 있도록 북한을 설득하려는 쪽으로 나아가려는 것 같다”고 말했다.
○ 점차 동력 잃는 ‘조건부 대북제재 완화론’
주요국들은 문 대통령이 요즘 국제사회에 설파하고 있는 ‘비핵화 조치를 조건부로 한 대북제재 완화’도 그리 달가워하지 않았다. 문 대통령을 만난 펜스 부통령은 “핵·미사일의 신고와 검증이 먼저”라고 못박았다.
심지어 북한에 우호적인 중국도 정작 대북제재 완화에 대해 제대로 언급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한중 양국은 문 대통령과 시 주석의 회동에서 제재 완화 관련 논의가 있었는지도 밝히지 않았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비핵화에 진전을 보인다면 상응하는 조치가 있어야 한다”며 기존의 입장을 되풀이했다. 한 외교 소식통은 “북핵 문제도 미중 무역 갈등 등 다양한 국제 역학 관계에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한중 정상은 “제2차 북-미 정상회담과 김 위원장의 서울 답방이 한반도 문제 해결의 중대한 분수령이 될 것”이라며 “문제 해결의 시점이 무르익어가고 있다”고 평가했다고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은 전했다.
청와대 관계자는 18일 “제2차 북-미 정상회담과 서울 답방 중 무엇을 먼저 할 것인지를 두고 북한도 고심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며 “아직 연내 답방 가능성이 닫혀 있다고는 보지 않는다”고 말했다. 김 위원장의 답방도 내년으로 미뤄진다면 서울 답방, 제2차 북-미 정상회담, 김 위원장의 방러, 시 주석의 방북 등 대형 이벤트들의 선후에 따라 북핵 협상도 요동칠 가능성이 크다.
한편 문 대통령은 시 주석의 방한을 요청했고, 시 주석은 “내년에 편리한 시기에 방문할 용의가 있다”고 말했다. 시 주석이 내년 비핵화 논의의 주도권을 쥐기 위해 잇따라 남북을 동시 방문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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