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지화 철저한 글로벌 금융사… 英 SC銀, 수익 94% 해외서 벌어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11월 21일 03시 00분


[강한 금융 강한 경제 만든다]2부 눈앞만 보는 ‘우물안 금융’
<1>뛰는 해외금융, 기는 한국금융

《 반도체, 자동차만 수출산업이 아니다. 금융도 충분히 수출산업이 될 수 있다. 글로벌 금융회사 중에는 100원의 이익을 낼 때 해외에서만 80∼90원을 벌어들이는 ‘수출효자’ 기업들이 많다. 하지만 한국 금융사들은 100원 중 해외에서 10원도 벌지 못하는 ‘우물 안 개구리’에 머물고 있다. 좁디좁은 국내 시장에 안주하고 있기 때문이다. 해외에 진출하더라도 뚜렷한 비전 없이 여전히 ‘깃발 꽂기’ 식의 생색내기에 그치는 사례도 많다. 이제부터라도 금융이 수출산업으로 도약할 수 있도록 날개를 달아줘야 한다. 》
 
“미국은 가장 큰 기회의 나라다. 미국에서 ‘글로벌 톱10 금융사’가 될 수익원을 끊임없이 발굴하겠다.”

일본 3대 메가뱅크 중 하나인 미쓰이스미토모은행(SMBC)의 다카시마 마코토 대표는 최근 미국 시장 공략에 대한 의지를 강조하며 이같이 말했다. SMBC는 지난해 미국 철도화물차량 임대회사인 아메리칸레일카리싱을 30억 달러(약 3조4000억 원)에 사들였다. 미국의 경제 성장으로 철도 운송 수요가 늘어날 것으로 보고 과감히 투자에 나선 것이다.

해외 유수의 금융회사들은 성장 한계에 다다른 자국 시장을 탈피해 세계무대로 발을 넓히고 있다. 단순히 ‘깃발 꽂기’식의 확장이 아니다. 수익원을 다변화하고 리스크를 줄이려는 철저한 장기 전략 속에 해외 진출을 추진하고 있다.

○ “안방은 좁다” 해외에서 돈 더 버는 은행들

수십 년 전부터 해외 영토를 넓혀온 미국, 유럽계 은행은 이제 본국보다 해외에서 돈을 더 많이 벌어들인다. 미국계 씨티은행은 지난해 총수익의 51%를 미국 이외 지역에서 올렸다. 영국계 스탠다드차타드은행은 올 상반기(1∼6월) 해외 이익 비중이 94%나 된다. 스페인계 산탄데르은행도 해외 수익 비중이 85%에 이른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엔 아시아 금융권의 약진이 두드러진다. 금융위기 여파로 미국, 유럽 금융사들이 해외 사업을 구조조정하는 틈을 노려 활발하게 해외 시장을 공략한 것이다.

중국은 국유 은행 5곳(공상, 농업, 중국, 건설, 교통은행)이 해외 진출을 주도하고 있다. 이들 은행은 2016년 말 현재 세계 63개국, 1280곳에 지점을 열었고 해외 자산만 5조6200억 위안(약 900조 원)에 이른다. 중국계 금융사는 한국에도 진출해 증권, 자산운용,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등으로 발을 넓히고 있다. 안방보험그룹은 국내 동양생명과 ABL생명(옛 알리안츠생명)을 잇달아 사들였다.

둥시먀오 중국 런민대 충양금융연구원 고급연구원은 “중국 금융사들은 정부의 일대일로(一帶一路·경제영토 확장 프로젝트)와 관련된 국가를 중심으로 진출해 현지 기업에 대한 서비스를 확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적극적인 인수합병(M&A)으로 동남아 시장을 장악한 일본 금융사들은 최근 북미 지역으로 영역을 확대하고 있다. 미쓰비시UFJ은행은 지난해부터 미 중부 및 동부 해안지역에 20여 곳의 점포를 내며 공격적인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보험업계에선 2015년 도쿄해상이 미국 HCC인슈어런스를, 2016년 손보저팬이 인듀어런스를 각각 75억 달러(약 8조5000억 원), 65억 달러(약 7조3000억 원)에 인수했다.

○ 고부가가치 사업, 장기 전략으로 승부

글로벌 금융사의 해외 진출 방식은 해외에 지점을 내고 현지 자국민이나 자국 기업을 중심으로 영업을 하는 국내 금융권과 큰 차이를 보인다. 이들은 차별화된 현지화 전략을 바탕으로 고부가가치 사업을 발굴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동남아 최대 은행인 싱가포르개발은행(DBS)은 2010년 이후 싱가포르, 중국권, 동남아 등 3개 축을 중심으로 ‘트랜잭션 뱅킹’을 강화했다. 이는 해외 네트워크를 활용해 기업 고객에 자금 관리, 지급결제, 무역금융 등의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다. DBS는 처음에는 글로벌 은행이 관심을 갖지 않던 중견·중소기업을 타깃으로 서비스를 지원하다가 최근 다국적 기업, 대기업 등으로 대상을 확대했다.

무엇보다 단기 성과에 치중하지 않고 10년 이상을 내다본 장기 전략이 해외 사업의 발판이 되고 있다.

호주의 호주뉴질랜드은행(ANZ)은 핵심 국가를 공략한 뒤 인접 국가로 진출 시장을 확대해 가는 전략을 펼쳐 성공했다. 초반에는 지리적으로 가깝고 경제적 교류가 많은 뉴질랜드, 피지에 해외 사업을 집중했다. 이후 아시아 지역에서 수익의 30%를 올리겠다는 ‘슈퍼 지역 전략’을 추진해 필리핀, 싱가포르, 홍콩 등으로 영업 전선을 확대했다.

일본 미즈호금융그룹은 해외 사업 확대를 위해 2010년부터 ‘슈퍼 30-50’ 전략을 추진하고 있다. 동남아, 미주, 중동·아프리카 등 권역별로 비(非)일본계 우량기업 30∼50개를 선정해 집중 영업하는 방식이다.

미쓰비시UFJ금융그룹(MUFG)은 계열사의 해외 진출 업무를 일원화하기 위해 독립된 글로벌사업본부를 운영하고 있다. 본사 눈치를 보지 않고 인사, 예산 등을 독자적으로 결정하다 보니 의사 결정이 빠르고 전문성이 높다. 진출 대상국의 현지인으로만 구성된 ‘글로벌 자문위원회’도 만들어 사전에 현지화 전략에 힘을 쏟는다.

서병호 한국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국내 금융사들도 중장기적 안목으로 해외 진출 전략을 수립하고 1, 2개 국가를 주력 시장으로 선정해 집중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김재영 redfoot@donga.com·박성민 기자
 
특별취재팀

▽팀장 정임수 경제부 차장 imsoo@donga.com

▽경제부 김재영 조은아, 런던=김성모, 시드니·멜버른=박성민, 싱가포르=이건혁, 호찌민·프놈펜=최혜령 기자

▽특파원 뉴욕=박용, 실리콘밸리=황규락, 파리=동정민, 베이징=윤완준, 도쿄=김범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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