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 9일, 초겨울 바닷바람이 차던 중국 칭다오(靑島)항의 첸완(前灣) 컨테이너터미널(QQCT) 남쪽 부두에서 사람 목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높게 쌓인 컨테이너들을 들어 올리고 내리는 대형 철제 집게와 컨테이너들을 운송하는 전용 차량이 뿜어내는 묵직한 기계음만이 항구를 가득 메우고 있었다. 지난해 5월 ‘아시아 최초’라는 수식어를 달고 문을 연 이곳의 ‘완전 자동화’ 무인터미널은 사람 그림자 하나 없이도 매끄럽게 업무를 처리하고 있었다.
21세기 실크로드를 열겠다는 ‘일대일로’(一帶一路·경제영토 확장 프로젝트) 정책을 추진 중인 중국 정부는 ‘일대일로’ 참여국 다수가 빚더미에 오르고 있다는 국제사회의 지적에도 중국 안팎의 물류 인프라 구축 계획을 진행시키고 있다. 한중일협력사무국과 중국 환추(環球)시보가 공동 주최한 ‘한중일 공동취재 프로젝트’에 참가한 3국 기자들이 방문한 칭다오항은 ‘일대일로’에 대한 중국 정부의 의지를 엿볼 수 있는 현장이었다. ‘일대일로’ 거점으로 꼽히는 칭다오항의 첨단 인프라 설비는 동아시아 너머에 시선을 두고 있는 중국 정부의 속내를 반영하는 듯했다.
● 칭다오항에 펼쳐진 ‘유라시아 지도’
QQCT 무인터미널에서 빠져나와 길 하나만 건너면 총면적 24만 ㎡의 대형 보세창고 건설현장이 나온다. 축구장 33개 크기와 맞먹는 규모다. 류융밍(劉永明) 칭다오서해안특급화물센터 최고책임자는 여기서 지도 한 장을 꺼내 들었다. 유럽에서 시작돼 중앙아시아 등을 거쳐 칭다오와 인천으로 이어지는 빨간색 선이 그어져 있는 세계지도였다. 류 책임자는 “철도로 유럽 화물을 가져와 칭다오를 거쳐 한국과 일본으로 전달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칭다오항 관계자들은 물동량 증가를 예측하며 무인터미널의 효율성 제고 효과에 기대를 걸고 있었다. QQCT 종합계획을 담당하는 저우융타오(周永濤) 주관은 “무인터미널은 유인터미널에 비해 시간당 3~5개의 컨테이너를 더 처리할 수 있다”며 “(경쟁 상대는) 우리 자신이다”라고까지 말했다. 현재 QQCT 무인터미널은 연간 150만 TEU(1TEU는 길이 6m 컨테이너 1개)의 물량 처리가 가능하다. 최종 목표는 무인터미널로 연간 520만 TEU의 화물을 처리하는 것이다. 지난해 기준 칭다오항 전체 물동량이 1830만 TEU(세계 8위)인 점을 감안하면 무인터미널이 전체 물량의 약 30%를 소화하게 되는 셈이다.
칭다오시에서 ‘일대일로’만큼이나 높은 관심을 갖는 경제 이슈는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과 한중일 자유무역협정(FTA) 협상 소식이다. 한국 일본과 지리적으로 가까운 칭다오시는 특히 역내 FTA 체결을 통한 전자상거래 확대에 큰 기대를 걸고 있다.
왕다쿤(王大崑) 칭다오전자상거래시험구 책임자는 “칭다오와 한국 일본을 오가는 배편은 일주일에 20여 차례에 이른다”며 “지리적 인접성을 활용해 한국 일본과의 전자상거래 배송 업무를 대폭 발전시키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항만 현장에서 “중국 ‘직구족’들은 주문 후 이틀 안에 한국 제품을 집에서 받아볼 수 있다”며 전날 인천항을 출발해 이날 오후 칭다오에 도착한 컨테이너 화물을 직접 보여주기도 했다.
● 中 “3국 협력 통해 자유무역 질서 보호해야”
중국 당국은 RCEP와 한중일 FTA 체결을 통해 미국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일으킨 보호무역주의 바람에 3국이 공동으로 대응해야 한다는 논리도 펼치고 있다. 칭다오시 상무국은 “세계 무역질서가 일방주의의 도전에 직면한 가운데 RCEP가 체결된다면 글로벌 자유무역 질서를 보호한다는 중대한 의미가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3국이 자유무역을 위해 공동으로 힘써야 한다는 견해는 중국 밖에서도 지지를 얻고 있다. 통상 전문가인 기무라 후쿠나리(木村福成) 일본 게이오대 교수(경제학)는 지난주 일본 도쿄에서 기자단과 만나 “자유무역을 통한 번영 메시지를 낸다는 차원에서 한중일 FTA는 중요하다”고 말했다. 하지만 중국 밖에서는 ‘일대일로’의 전망에 대해 입장이 갈린다. 서진교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 선임연구위원은 “중국이 조건 없는 돈을 개발도상국에 많이 건네면서 투자금을 회수하는 데 걱정이 생겼다”며 “중국 밖에선 ‘일대일로’ 초기부터 이를 우려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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