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러밴에 최루탄’ 촬영 김경훈 기자
이민자들과 10일간 동고동락… 멕시코 국경 현실 생생히 담아
“美선 평화, 다른곳선 또다른 전쟁”
로이터통신 한국인 사진기자 김경훈 씨
저 멀리 미국으로 넘어갈 수 있는 국경 장벽이 보인다. 멕시코 티후아나 접경 지역의 스포츠 경기장에 마련된 간이 숙소에 머물던 중미 출신 이민자 행렬 캐러밴의 일부가 장벽을 향해 행진하기 시작한다. 그러자 미국 국경 요원들은 수십 발의 최루탄을 발사한다. 다섯 살짜리 쌍둥이 딸과 이 장면을 지켜보던 마리아 메사 씨(39)는 기겁을 하고 두 딸의 팔을 부여잡은 채 최루탄을 피해 달아난다. 메사 씨는 유명한 할리우드 애니메이션 ‘겨울왕국’의 주인공 엘사가 그려진 티셔츠를 입었고 두 딸은 기저귀 차림이다.
로이터통신의 한국인 사진기자 김경훈 씨(44)는 메사 씨 모녀가 피신하는 장면을 보고 순간적으로 셔터를 눌렀고, 이 사진은 최근 미국에서 가장 관심을 받는 사진이 됐다고 워싱턴포스트(WP)가 26일(현지 시간) 보도했다. 민주당 의원들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캐러밴 입국 금지 정책을 비난할 때마다 이 사진을 들고 흔드는가 하면 사진 속 주인공 메사 씨에 대한 미국 언론의 인터뷰 요청이 줄을 잇고 있다.
김 씨는 이 사진 외에 메사 씨의 딸 중 한 명이 도망가다가 울고 있는 사진 1장과 이민자 80여 명이 최루탄을 피해 이리저리 달아나는 사진 1장 등 총 3장을 찍어 전 세계 언론사에 송고했다. 사진 덕분에 일약 유명해진 김 씨는 WP와의 인터뷰에서 “사진들은 지금 국경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잘 보여준다”고 말했다. 사진은 지난 일요일(25일)에 찍은 것들로 미국인들이 평화로운 주말을 보내고 있는 동안 멕시코 국경지대에서는 ‘전쟁’이 벌어지고 있었다는 것이다.
WP에 따르면 김 씨는 14일 일찌감치 멕시코의 수도 멕시코시티로 갔다. 멕시코시티에 모여든 이민자들과 함께 생활하며 티후아나까지 여정을 이어갔다. 그들과 열흘 이상 동고동락했기 때문에 이민자들의 현실을 보여주는 생생한 사진을 얻을 수 있었다고 WP는 전했다.
로이터통신에서 15년 이상 일해 온 김 씨는 과거 서울지국에서 근무했다. 지금은 도쿄지국 소속이다. 그는 “현장에 있었으므로 사진을 찍은 것뿐인데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 화제가 되고 있다니 놀랍다”고 겸손하게 말했다. 김 씨는 화제의 사진을 찍을 당시 메사 씨로부터 50m 정도 떨어진 곳에서 마스크를 쓰고 있었다. 스페인어를 모르는 그는 메사 씨와 대화는 할 수 없었다. 나중에 스페인어를 할 줄 아는 동료와 함께 이민자 숙소를 찾아가 메사 씨를 만나 안부를 물었다. 온두라스 출신의 그녀는 쌍둥이 딸을 포함한 5명의 자녀를 데리고 미국에 체류하고 있는 남편과 함께 살기 위해 국경을 넘으려 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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