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일 오전 8시 반 일본 도쿄 미나토(港)구 시나가와(品川)역 앞. 출근길 직장인들로 가득 찬 역 출구 앞에 10여 명의 사람들이 마이크를 들고 미쓰비시중공업을 규탄하고 있었다. ‘나고야미쓰비시조선여자근로정신대 소송을 지원하는 모임’, ‘히로시마미쓰비시중공업강제징용배상청구소송변호단’, ‘조선인강제연행진상조사단 일본인연락협의회’ 등 피해자들을 지원하는 각 지역단체 회원들이 모여 집회를 연 것이다. 시나가와역 앞은 미쓰비시중공업 도쿄 본사가 있는 곳이다.
●한국 대법원 판결, “중대한 인권 침해의 출발점”
29일 한국 대법원 2부가 일제강점기 근로정신대 및 강제징용 피해자들이 일본 미쓰비시중공업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에 대해 원고 승소 판결을 내렸다. 지난달 30일 대법원 전원합의체의 신일본제철(현 신일철주금)을 대상으로 한 첫 배상 판결 이후 이뤄진 재판이다. 원고 측을 지원해오던 일본 내 변호사 및 시민단체 회원들은 대법원 판결 당일 나고야, 히로시마 등 당시 전범기업이 피해자들을 강제동원했던 지역에서 기자회견을 열었다. 29일에는 도쿄에 모여 집회를 연 것이다.
이들은 ‘한국 대법원 판결, 원고에 미소’라고 적힌 현수막을 들고 2시간 동안 릴레이 집회를 열었다. ‘나고야미쓰비시조선여자근로정신대 소송을 지원하는 모임’의 데라오 데루미(寺尾光身) 공동대표는 “강제징용이 일어난 지 반세기 이상 지났지만 (강제징용) 문제는 방치 돼 왔다. 한국 대법원의 이번 판결은 빙산의 일각”이라며 하루빨리 미쓰비시중공업이 피해자들에게 손해배상금을 지급할 것을 촉구했다.
집회 후 이들은 미쓰비시중공업 도쿄 본사 앞으로 장소를 옮겨 규탄 집회를 갖고 관계자에게 배상 촉구 등의 내용을 담은 서한 및 유인물을 전달했다. 이 과정에서 각 단체 대표들이 미쓰비시중공업 본사 내부로 들어가 담당자를 만나려 했으나 미쓰비시중공업 측이 경비원을 앞세워 통제를 하는 등 한 때 이들의 출입을 제한하기도 했다. 이들은 12일 한국 시민 단체 관계자들과 신일철주금 본사를 찾았을 때도 용역 경비회사 직원이 응대를 하는 등 문전박대를 당한 바 있다.
●日 정부, “한국이 압류하면 우리도 압류할 것”
이런 가운데 일본 정부가 한국에서 손해배상 판결을 받은 일본 기업들의 자산을 강제로 압류할 경우 일본 내 한국 자산을 똑같이 압류하겠다는 대항 조치를 검토하고 있다고 마이니치신문이 30일 보도했다. 상대국이 국제법 위반을 하면 이런 조치를 할 수 있도록 유엔이 조건부로 인정하고 있다는 게 일본 측 주장이다. 마이니치신문은 “실현 가능성은 낮지만 강경한 자세를 통해 한국 정부의 대응 촉구를 이끌어내는 것이 일본 정부의 의도”라고 전했다.
이에 대해 고노 다로(河野太郞) 일본 외무상은 29일 정례 기자회견에서 이 사실에 대해 부정하지 않았다. 고노 외상은 “한국 정부가 그런 조치를 당하지 않도록 조기에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에 대해 일본 내에서는 제도적 근거가 부족하다는 분석도 나온다. 오쿠무라 슈지(奧村秀二) 공립법률사무소 변호사는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일본이 침략전쟁으로 피해를 본 사람들에게 배상을 하지 않는 것이 오히려 국제법 위반”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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