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변호사 140명이 참여한 ‘상영 방행 행위’ 금지 가처분신청 받아들여
박수남 감독의 ‘침묵-일어서는 위안부’ 상영장 300m 이내 접근 못해
위안부영화 상영 관련 첫 사례인 듯
변호사 측 “다른 우익 단체에게도 경종을 울릴 것”
재일동포 박 감독,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몰라 무섭다”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 15인의 목소리를 담은 재일동포 박수남 감독(83)의 다큐멘터리 영화 ‘침묵, 일어서는 위안부’의 일본 내 상영을 앞두고 박 감독 측과 뜻을 함께 하는 일본 변호사들이 일본 우익단체의 상영 방해 행위에 대한 법원의 금지가처분 결정을 받아냈다.
박 감독 측은 4일 요코하마(橫浜) 시를 중심으로 활동 중인 우익 단체 ‘기쿠스이(菊水)국방연합’을 대상으로 “8일 요코스카(橫須賀)에서 열리는 상영회에 대해 접근을 금지해달라”는 가처분명령신청를 법원에 냈는데 6일 요코하마지방재판소 민사부가 이를 받아들였다. 위안부 관련 영화에 대해 이런 가처분 결정이 내려진 것은 처음인 것으로 알려졌다.
법원은 기쿠스이국방연합 측이 상영회장 반경 300m 이내에서 집회를 열거나 상영회장에 침입하는 등 일체의 방해 행위를 하지 못하도록 했다. 이 단체 관계자들은 지난 달 28일 요코하마의 상영회장 앞에서 확성기를 틀어놓고 상영회 취소를 외쳤으며 관객들의 불안감을 조성한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일부 우익 세력이 상영회장에 무단으로 침입해 “상영을 중지하라”며 30분 간 욕설을 하고 난동을 부리기도 했다.
박 감독과 변호를 맡은 간바라 하지메(神原元) 변호사는 6일 요코하마의 가나가와변호사회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법원의 이번 가처분 결정을 설명했다. 간바라 변호사는 “헌법에 명시된 표현의 자유를 짓밟고 민주주의 근간을 흔드는 우익 세력의 행동을 도저히 용납할 수 없다”며 “민주주의를 파괴하는 무법자들과 끝까지 싸울 것을 선언한다”고 밝혔다. 박 감독을 돕겠다며 일본 전국에서 모인 변호사만 140명인 것으로 알려졌다.
고령의 몸을 이끌고 회견장에 참석한 박 감독은 여전히 신변의 위협을 느끼고 있다고 말했다. 박 감독은 “이 영화를 만들 때도 그랬듯이 여러 곳에서 방해를 받았다”며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몰라 살아있다는 느낌이 나지 않을 정도로 무섭다”고 말했다.
우익 세력들은 “일본 정부의 견해와 다른 정치적으로 편향된 반일 영화이며 선조들을 모독하는 영화를 상영하는 것은 있을 수 없다”며 항의하고 있었다. 이들의 항의는 9월경부터 시작됐으며 10월말 가나가와(神奈川) 현 지가사키(茅ヶ崎) 시 상영회를 앞두고 산케이신문 등 우익 성향 매체가 상영회 소식을 보도하면서 항의가 ‘집단화’ 됐다. 최근 신일철주금(신일본제철)과 미쓰비시중공업 등 전범 기업의 강제징용에 대한 한국 대법원 판결 및 위안부 화해치유재단 해산 등을 계기로 일본 극우 단체의 반한(反韓) 시위 강도가 더욱 거세지고 있다. 박 감독의 딸인 박마의 영화 프로듀서(50)는 “헤이트스피치(특정 인종에 대한 혐오 발언) 등 입에 담기 힘든 험한 말이 쏟아지고 있다”고 말했다.
박 감독 측은 향후 도쿄 등에서 있을 상영회에 또 다른 우익 단체의 항의가 있을 경우 법적 조치를 추가로 하겠다고 밝혔다. 간바라 변호사는 “이번 법원의 조치는 우익 세력의 집단적 항의를 용인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사회에 명령한 데에 의의가 있다”며 “다른 우익 단체에게도 경종을 울릴 것”이라고 말했다.
이런 가운데 영화를 통해 한일 관계를 다시 보자는 움직임이 젊은층을 중심으로 나타나고 있다. 도쿄 니혼대 예술학부 영화학과 3학년 학생들은 8일부터 ‘한반도와 우리’라는 제목으로 한일 간 역사 및 재일한국인 등을 다룬 영화 18편을 도쿄 시부야의 극장 ‘유로스페이스’에서 일주일 간 연다. 이들은 박 감독의 ‘침묵, 일어서는 위안부’를 비롯해 윤동주 시인의 일대기를 그린 이준익 감독의 영화 ‘동주’, 재일교포 1세대의 이야기를 다룬 최양일 감독의 영화 ‘피와 뼈’ 등을 상영할 계획이다.
일본 대학생 한일 영화제이날 도쿄 네리마(練馬) 구 니혼대 예술학부 에고타(江古田) 캠퍼스에서 만난 가네코 기와코 영화제 총괄 담당(21)은 “수업 시간에 재일동포에 관한 영화를 본 후 한일 관계에 관심이 생겨 영화제를 준비하게 됐다”고 말했다. 이어 “그동안 일본의 어두운 역사에 대해 피하고 싶었던 부분이나 한반도에 대해 금기시 돼 왔던 부분을 내 또래 젊은 학생들에게 전달하고 싶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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