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용 국가안보실장이 21일 청와대를 찾은 스티븐 비건 미국 국무부 대북정책특별대표에게 건넨 제안이다. 정 실장은 “동짓날 팥죽을 먹어야 복을 받는다고 얘기하는 것이 우리 전통”이라며 이같이 말했다고 청와대 고위관계자는 전했다. 연초 2차 북-미 정상회담에 대한 덕담을 나누며 기대감을 표시한 것으로 풀이된다.
○ 美, 상응조치 꺼내들고 “북한과 직접 대화”
미국은 북-미 비핵화 대화 재개를 위해 북한에 연일 ‘당근’을 내보이고 있다. 19일 한국을 방문하며 대북 인도적 지원 재개 가능성을 밝힌 비건 대표는 21일 외교부에서 열린 한미 워킹그룹회의 직후 “북한과 신뢰를 구축할 수 있는 많은 다른 조치들을 탐색할 준비가 돼 있다”고 말했다.
특히 비건 대표는 이날 “북한과 직접 얘기하고 싶다”며 “북한이 비핵화에 착수하면 검토하고자 하는 몇 가지 새로운 계획(initiatives)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이니셔티브’는 비핵화 상응조치에 대한 구상을 언급한 것으로 풀이된다. 북한의 선(先)비핵화 조치를 압박하는 데 집중했던 미국이 상응조치에 대한 구체적인 언급에 나선 것.
비건 대표는 상응조치로 대북 인도적 지원 카드를 공개적으로 꺼내들었다. 비건 대표는 한미 워킹그룹회의를 마친 뒤 “(인도적 지원에 대해) 논의했고 내년에 몇 가지 조치를 취하기로 합의했다”고 말했다.
트럼프 행정부는 이와 함께 북-미 연락사무소 개설과 인적 교류 확대 등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동시적 보상을 요구하고 있는 북한이 비핵화 조치를 취하면 북-미 관계 정상화를 위한 단계적인 조치를 취할 수 있다는 얘기다. 문재인 대통령은 1일 한미 정상회담 직후 가진 기내 간담회에서 “상응조치가 반드시 제재 완화를 뜻하는 것은 아니다. 인도적 지원을 한다든지, 스포츠 교류 등 비정치적인 교류도 있을 수 있다”고 한 바 있다.
다만 비건 대표는 대북제재에 대해선 강경한 태도를 보였다. 그는 “미국은 독자 제재와 유엔 제재를 완화(easing)할 의향이 없다”며 “인도적 지원은 유엔 대북제재나 미국의 독자 제재를 저촉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 北은 미국 비난 수위 높여
북한은 미국의 유화 메시지에도 연일 대미 비난 수위를 높여가고 있다. 북한의 대외 선전용 매체인 ‘메아리’는 이날 “얼마 전 미 국무성은 우리 공화국을 비롯한 10개의 나라를 ‘종교자유 특별우려국’으로 재지정하는 놀음을 벌었다”며 “국제무대에서 제재 압박의 분위기를 계속 고취해 보려는 목적”이라고 주장했다.
북한 조선중앙통신은 전날에는 “조선반도 비핵화란 우리의 핵 억제력을 없애는 것이기 전에 조선에 대한 미국의 핵위협을 완전히 제거하는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미국의 대북제재 유지 입장에 핵개발에 다시 나설 수 있다고 위협한 데 이어 이번엔 미국도 한국에 대한 핵우산을 제거해야 한다고 주장한 것이다. 그러면서 “(대북제재 완화는) 조선반도 비핵화를 위한 미국의 진정성을 판별하는 시금석”이라고 주장했다. 비핵화에 진전을 보려면 미국이 대북제재 완화를 받아들여야 한다는 얘기다.
청와대는 북한의 이 같은 반응에도 북-미 비핵화 협상 전망을 낙관적으로 보고 있다. 정 실장은 이날 비건 대표와의 회동 직후 가진 기자간담회에서 “북한의 비핵화 프로세스는 이제 돌이킬 수 없는 단계로 진입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북-미 신경전에도 북한이 완전한 비핵화 합의를 되돌리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얘기다.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북-미 간에 여러 논의는 진행되고 있는 것”이라며 “북-미 간 여러 협상 과정에서의 어려움이 없지 않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한 번도 공개적으로 (북한에 대해) 불만을 표시한 적이 없었다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 남북 협력 사업 ‘제재 면제 보따리’
남북 교류협력 사업은 당분간 순항할 것으로 보인다. 한미는 이날 워킹그룹회의에서 26일 남북 철도·도로 연결 사업 착공식에 필요한 물자들의 반출에 대한 대북제재 면제에 합의했다. 정부는 내년 4월부터 강원 철원군 비무장지대(DMZ) 내 화살머리고지 일대에서 진행될 남북 공동유해발굴사업과 독감 치료제인 타미플루 제공에 대해서도 미국의 지지를 얻어냈다.
다만 지난해 의결돼 올해까지 집행되지 못한 인도적 지원 국제기구 공여금(800만 달러)은 시기를 확정짓지 못하고 차후 논의의 의제로 넘어가게 됐다. 이르면 내년 1월 추진 중인 이산가족 화상상봉도 논의됐지만 당장 제재 면제 여부가 결정 나지는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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