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해상에서 한국 측 구축함이 북한 조난 선박을 구조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레이더 가동’ 문제와 관련해 일본 정부가 관련 ‘동영상’을 전격 공개한 것은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의 결정이었다고 일본 언론들이 29일 보도했다.
29일 산케이신문과 마이니치신문, 도쿄신문 등에 따르면 아베 총리는 27일 이와야 다케시(巖屋毅) 일본 방위상을 총리관저에 비공식적으로 불러 동영상 공개를 지시했다. 도쿄신문은 영상 공개에 대해 방위성이 “한국을 더 반발하게 할 뿐”이라며 신중론을 폈고 이와야 방위상도 부정적이었지만 총리의 한마디에 방침이 바뀌었다고 전했다. 신문은 “위안부 문제와 관련한 화해·치유재단의 해산과 강제징용 판결 등으로 아베 총리가 발끈했다”는 자민당 관계자의 발언을 전하며 여기에 레이더 조사(照射) 문제가 생기자 아베 총리가 폭발한 것이라고 전했다.
특히 일본 방위성이 영상을 공개한 직후인 28일 오후 5시 열린 비공개 기자브리핑에서도 통합막료감부(한국의 합동참모본부에 해당)의 한 관리가 동영상 공개의 적절성에 대한 의문을 표시한 것으로 드러났다. 외교 소식통에 따르면 이 관리는 “모든 정보를 공개할 수 없기 때문에 이 동영상만으로 한국을 설득시키기 힘들 수 있지만 한국이 화기(火器)관제레이더(추적레이더)를 쏜 것은 명백하다”고 재차 강조했다. 개운치 않은 결정이었음을 시사한 셈이다.
마이니치신문은 영상 공개에서 아베 정권이 국내 여론 대책으로 활용하려는 의도가 보인다고 지적했다. 아베 정권이 최근 임시국회에서 법안들을 무리하게 통과시켰다가 30%대까지 추락한 지지율을 끌어올리기 위해 정치적으로 활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동영상에 대해 일본 전문가들도 ‘증거’로 부족하다고 지적한다. 방위성이 공개한 기장과 대원 간 대화 내용이 담긴 13분 7초 분량의 동영상에서 레이더파와 관련된 음성이 삭제됐기 때문이다. 해상자위대 소장 출신인 이토 도시유키(伊藤俊幸) 가나자와(金澤)공대 도라노몬 대학원 교수는 아사히신문에 “자위대의 능력과 관계된 것이어서 (레이더파 음성을) 지웠겠지만, 일본 주장의 근거로는 약하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일본 영상 속 해상자위대원 목소리를 들어보면 광개토대왕함이 실제 대공 사격에 쓰는 추적 레이더(STIR-180) 빔을 초계기를 향해 쏘는 등 사격이 임박한 위기 상황이라고 하기엔 긴장감이 거의 느껴지지 않았다. 통상 초계기 등 항공기는 해상의 함정에 탑재된 함포 등 사격용 추적레이더 빔 등 위험전파가 자신들을 겨냥하는 것을 탐지하면 즉각 함정으로부터 떨어지는 회피 기동을 한 뒤 상황 파악에 나선다. 그러나 일본 초계기는 레이더 전파를 탐지했다면서 상황 파악을 하고 함포 방향까지 탐지한 뒤에야 회피 기동을 했다. 군 관계자는 “초계기가 대공 사격용 추적 레이더가 쏘는 빔에 걸린 ‘록온(Lock On)’ 상황이었다면 초계기 내에서 비상경보음이 계속 울려야 하지만 그런 장면도 없다. 위급한 상황이 아니었다는 증거”라고 말했다. 해상자위대원은 “(광개토대왕함) 함포는 이쪽(초계기)을 향해 있지 않습니다”라고 말하기도 한다. 한국 해군이 자신들을 위협할 의사가 없다는 것을 스스로 확인한 셈이다.
여전히 관건은 일본 방위성이 핵심 증거인 레이더 주파수 데이터를 공개하느냐에 달린 셈이다. 아직은 당시 주파수 대역이 군사기밀이라는 이유로 공개하지 않고 있다. 이에 한국 군 당국은 북한 어선을 찾기 위해 ‘MW-08’ 레이더를 가동했을 뿐 추적레이더는 아예 꺼놓았다고 강조했다. 군 관계자는 “일본이 주파수 대역을 절대 공개하지 않고 이 사태를 계속 끌고 가려 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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