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처음 선보인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소파 신년사’가 미국 언론과 전문가들로부터 부정적인 평을 받았다.
로스앤젤레스타임스 등 미 언론은 개인 서재 같은 곳에서 가죽 소파에 앉아 신년사를 읽은 김 위원장에 대해 “과거 인민복을 입고 연설문을 낭독했던 것에 비해 ‘신선한 이미지’였다”고 말했다.
그러나 칭찬은 여기까지였다. 전문가들은 “미국 대통령의 노변정담(fire-side chat) 담화를 벤치마킹한 듯한 김정은의 연설은 성공적이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한마디로 연설의 배경과 내용이 미스매치라는 것이다.
노변정담은 프랭클린 루스벨트 전 대통령이 1933~44년 대공황, 뉴딜정책, 제2차 세계대전 발발 등 혼란한 국내외 정세 속에서 국민들에게 라디오를 통해 각종 국정과제를 설명하던 방식이었다. 루스벨트 대통령은 마치 벽난로 앞에 가족들과 얘기를 나누듯 친근한 톤으로 국민들을 설득했다.
미국 대통령들은 간혹 백악관 집무실이라는 친밀한 배경에서 연설을 하기도 한다. 주로 의자에 앉거나 책상에 걸터앉아 연설하는 경우가 많다. 이는 백악관의 철저히 계산된 ‘우리끼리(between us)’ 전략이다. “우리끼리 하는 말인데…”식으로 국민들을 친구나 가족의 위치로 격상시켜 해외 파병처럼 인기 없는 결정을 국민들의 감정에 호소해 설득하기 위한 목적이다.
반면 김정은은 소파에 앉아 미국에게 제재 해제를 요구하며 “만약 계속 압박을 가한다면 새로운 길을 찾아 나설 수 있다”는 협박성 메시지를 보냈다. 애덤 마운트 미과학자연맹 선임 연구원은 “소파와 개인 서재는 ‘위로(soothing)’의 소도구인데 정작 연설 내용은 위협(threatening)의 이미지를 발산했다”고 밝혔다. 이어 “차라리 기존 연설 때처럼 선 자세에서 당지도부 인사들의 우러러 보는 가운데 미국에 메시지를 보냈다면 설득 효과가 컸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김정은이 사전 제작 과정까지 공개하며 소파 연설을 택한 이유는 무엇일까. 전문가들은 지난해 6월 싱가포르에서 열린 북-미 정상회담을 통해 인간적인 모습을 보이는 것에 성공했다는 김정은의 자신감을 보여준다고 분석했다.
김두연 신미국안보센터(CNAS) 선임 연구원은 “소파 신년사를 보면 싱가포르 거리를 돌아다니며 밤나들이를 했던 김정은의 모습이 연상된다”며 “인권 유린의 독재자가 아니라 현대적 감각을 지닌 존경받는 정치인(statesman)이라는 이미지를 보이고 싶어 그 소파에 앉은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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